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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때문에 엄마가.1    
글쓴이 : 김혜숙    25-11-11 17:10    조회 : 1,316


                                 나 때문에 엄마가?

                                                                                    김혜숙(미아반)

     어린 시절 나는 아침에 눈 뜨는 게 힘들 정도로 늘 건강이 안 좋았다. 그래서 곧잘 늦잠을 잤다. 잠을 많이 자고나면 그나마 몸 상태가 좀 나아졌다. 잠결에 들리던 바스락 소리와 채소 써는 정겨운 도마 위 칼질 소리 구수한 된장국과 밥짓는 냄새에 부시시 눈을 떠보면 집 안팎은 정돈이 잘 되어 있어 티끌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마당에는 빨래가 가지런히 널려 있었고 부엌엔 소소하지만 맛깔스런 밥상이 차려져 있다. 어머니는 워낙 부지런하여서 한 낮에 청소를 한다든지 빨래를 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로 알았다.

어머니는 종갓집 6남매의 장녀로 외할머니로부터 야무지게 살림 솜씨를 전수 받았다. 음식 솜씨며, 바느질등 여자가 갖추어야 하는 교양 덕목 완벽 그 자체였다. 그 시절 여자에게는 배움이 허용되지 않아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가며 야학을 통해서 한글만 겨우 터득한 정도였다고 했다. 굴함도 부족함도 없이 당당하게 사신 여장부 같은 분이었다.

이웃에 공부가 싫어서 허구한 날 수업을 빼먹기 일쑤고, 집안에서는 문제아였던 손자뻘 되는 고등학생인 남자 조카가 살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학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경찰서며 학교 교장실을 쫓아다니면서 며칠이고 그들을 설득하여 결국 조카를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을 시키면서 다시 한번 주변을 의아하게 했다.

1950년대 나라도 가난한 시절 실향민이었던 아버지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가세도 많이 기울고 결국 아버지는 모든 포부와 꿈을 접고 공무원이 되어 생계만 겨우 이어갈 정도였다. 그 시절 공무원 월급으로는 먹고 산다는 일이 막연했던 때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가리는 일 없이(외할머니께 배운 한복 바느질 솜씨로 삯바느질도 했었다.) 무엇을 하든 자식 키우는 일에는 열정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끼니 때마다 정갈한 반찬에 격식이 갖춰진 밥상으로 늘 우리 가족은 배불리 잘 먹고 살았다. 덕분에 먹는 거며, 입는 거는 주변에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반찬을 만들 때에는 맛을 보는 법이 없었으며, 특별한 것 없이 짐작으로 넣은 양념만으로 마법 같은 음식 맛을 냈다.

어머니 연세 칠십 초. 중반이 되면서부터 아주 가끔씩 음식 간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짜거나 달거나 오신채의 강한 맛으로 당황한 적도 있었다.

엄마 음식 맛이 이상해하면 당신도 짐작했는지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반찬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여러날 유심히 보니 마늘만 계속 넣거나 혹은 간장. 소금만 계속 집어 넣는 광경을 보고 놀랐다.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 때마다 옆에서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엄마 엄마! 방금 전에 소금 넣었는데...? 아니아니...마늘과 설탕도 넣었어엄마도 긴가민가 한지 응 그래? 하면서 슬그머니 수긍한다.

엄마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인품을 가진 분으로 평소에 입성이 무척 단정하였다. 마당조차도 슬리퍼를 신고 나서지 않았고 단화를 꼭 신고 나설 정도이었으며 과하게 웃지도 않았다. 인자한 무표정으로 평생을 일관하셨다. 남편을 일찍이 여의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로 우리 형제 누구도 어머니의 눈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친척에게까지 인정받고 칭송이 자자하던 분이 음식 감각을 잃어버리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해도 지기도 전 오후만 되면 집안 전체의 창문마다 고리를 잠그고 커튼을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밖이 너무 환해요아니야 밖에서 사람이 들여다보고 있잖아얼른 닫아야 해” ‘엄마 그렇게 다 잠그고 내리면, 엄마랑 나는 힘이 없잖아. 불이 나서 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저런 미친xx 같으니 라구... 말도 흉측해라!!

 

어머니의 강박은 날로 심해만 갔고 모녀간의 입씨름도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서서히 증세를 보였지만 못 하게 말리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화를 냈다. 그 정도가 되었어도 워낙에 정갈했던 분이라서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 아무도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말리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평소 어머니로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분노를 자주 분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라도 나서서 어머니 입장에서 이해한다거나 이유를 헤아려 본다거나 치솟는 감정을 진정 시켜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달라도 너무 달리진 엄마는 병원에서 이미 치매 판정을 받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기도 싫었다. 분노는 폭악에서 거친 욕설로 나날이 심해져 갔다. 어디에서도 본적도, 듣지도 못한 폭언을 마구 퍼부어댔다. 그토록 우아하고 인자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이상 옛날의 엄마가 아니었다. 한날은 이웃에 사는 어머니 지인들이 어머니 생신날 식사 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그 집안은 흉. 허물도 없냐’? ‘어쩜 그렇게 집안 얘기 한번을 안하냐’!!! 했다. 그랬던 엄마였는데, 자식들 집을 오가며 이간질로 불란을 일으켜 집안 간에 오해와 갈등과 불화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어머니가 그렇게 변하기까지 관심 가져주지 못한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도 같은 심정이었다. 형제, 친척들이 생각할 때 불화의 원인 제공자는 항상 나였다. 주변 사람들도 갑자기 돌변한 어머니를 이해하려니 이유를 찾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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