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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글쓴이 : 이나경    25-07-19 20:53    조회 : 1,520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이나경

 

 

선생님, 저 어떤 애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어요.”

3교시에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자 겨울이가 수업과 관계없는 말을 한다. 평소 같았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하자고 말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경청할 필요가 있겠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그 어떤 가르침을 받아도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는 경도의 지적장애 학생으로서, 또래와 이야기 나누는 것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회성은 약간 부족하다. 겨울이의 이런 면을 이해할 수 있는 또래가 있어 그녀는 소수의 친구와 가끔 어울린다. 2교시 쉬는 시간에 그녀의 친구가 또 다른 아이에게 본인 그리고 겨울이와 함께 방과 후에 놀자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그녀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겨울이랑 같이 놀자고? 근데 걔 좀 그렇지 않니, 걔는 빼고 우리 둘만 놀자.”

문제는 겨울이가 이 말을 뒤에서 다 들은 것이다. 그 순간 겨울이의 기분은 얼마나 속상했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마음에 난 생채기를 애써 감추며 특수학급으로 씩씩하게 왔지만, 교사의 얼굴을 보자 본인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게 된 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어쩌면 엄마보다 친구가 좋을 수도 있는 나이. 이런 어린이들이 또래에게 배척받는다는 것은 참 가혹한 일이다. 어른인 나도 견디기 힘든 일인데 이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겨울이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내 어린 시절의 흑역사를 들춰봤다. 어린이들은 교사가 성장하면서 겪었던 실패담을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선생님도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5학년이었던 나는 점심시간에 또래와 함께 밥을 먹기보단 홀로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못생기고 뚱뚱했던 그리고 어쩐지 꼬질꼬질했던 나는 또래에게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라기보단 굳이 함께 놀고 싶지 않은 아이, 좋게 말해서 깍두기 정도 되는 아이였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은 참 바빴다.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사셨던 덕분에 자식을 여러 학원으로 보낼 경제적 여유는 있었다. 그래서 난 하루에 3~4개의 학원을 이리저리 다니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요즘은 이런 모습이 흔하지만,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날도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수업이 시작할 때는 밖이 환했었는데 수업이 끝나니 땅거미가 어둡게 내렸다. 함께 집으로 가던 아이 중 한 명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학원 애들이랑 같이 어묵 먹으라고 돈 줬어. 우리 같이 어묵 먹자.”

마침 배가 출출했는데 정말 반가운 이야기였다. 배고픈 나에게 이 아이는 마치 재림 예수와 같았다. 나와 또 다른 어린 양들은 예수를 따라 분식 트럭으로 갔다.

 

분식 트럭에는 어묵뿐만 아니라 떡볶이, 튀김 등을 팔았다. 난 탄수화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떡볶이가 더 먹고 싶었지만, 얻어먹는 주제에 메뉴 선정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 가장 통통해 보이는 어묵 꼬치 하나를 집었다. 그 순간, 예수는 루시퍼처럼 날카로운 음성으로 나에게 일갈했다.

, 너 사줄 돈은 없어. 우리는 4명인데 엄마가 3명 먹을 돈만 줬거든. 넌 그냥 국물만 마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럼 처음부터 나만 빼고 우리끼리만 가겠다고 말하던지, 사줄 것처럼 바람 넣어놓고 넌 국물만 마시라니.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집었던 어묵 꼬치를 내려놨다. 그리고 종이컵에 국물을 가득 담았다. 그 와중에 무언가를 씹어 먹고 싶어서 무 한 토막을 주인 몰래 쏙 넣었다. 어묵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어린이들 사이에 무를 질겅질겅 씹다 보니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게 무인지 지우개인지 영 분간이 되지 않았다.

 

되게 치사하네요. 근데 선생님은 그냥 집에 간다고 하지 왜 옆에서 국물만 마셨어요?”

겨울이는 마치 본인이 겪은 일인 것처럼 정색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러게, 그날의 나는 왜 싫은 티도 못 내고 조용히 국물만 마시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친구가 워낙 없던 나는 이렇게라도 해서 또래들과 함께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비록 이 아이가 나에게 국물만 먹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함께 분식 트럭까지 걸어간 나름 친구 사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아이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 있었던 상황, 순간 얼굴에 화끈 달아오르던 열기, 길고양이처럼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뜨던 상황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던 종이컵 속 국물만 기억날 뿐이다.

 

루시퍼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다고 어린 양인 나까지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겨울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겨울이가 그 아이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겨울이는 동그란 눈을 꿈뻑꿈뻑 거리기만 하고 입을 떼지 못한다. 사람은 넷인데 준비된 돈으로는 셋만 먹일 수 있는 상황.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모든 아이의 입에 음식을 넣어줄 수 있을까.

 

영화 꿈의 제인의 주인공, 제인은 본인이 돌보는 청소년들을 본인 앞에 앉게 하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4명인데 이렇게 케이크가 세 조각만 남으면 말이야, 그 누구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차라리 다 안 먹고 말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

내가 만약 그날 그 아이였다면 어묵 대신 떡볶이를 먹자고 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배부르게 먹지는 못해도, 모두 한 입씩은 먹어볼 수 있을 테니. 대신 어묵 국물을 한없이 떠 마실 것이다. 어묵 냄비 속을 깊게 탐사해서 무 조각도 많이 건져 아이들 종이컵 안에 하나씩 쏙쏙 넣어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름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 생각 어떤 것 같아?”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선생님.”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겨울이의 두 눈의 물기는 어느새 말랐다. 동그랗게 얼어있던 눈매도 지금은 손톱달처럼 휘어있다.

 

지금의 나는 달랑 한 개의 어묵이 무슨 대수인가. 고급 오뎅바에 가서 개당 3000원 하는 어묵 꼬치 20개를 야무지게 먹고 고급 사케 한 병까지 사 먹을 여유까지 있다. 그날의 서글펐던 아이는 다행히 지갑 속이 넉넉한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지갑만 넉넉한 게 아니라 마음 역시 넉넉하다고 자부해 본다. 차라리 내가 안 먹고 말지. 사주겠다고 모두 데려가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그런 시시한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역시 그렇게 시시한 아이들로 키워내고 싶지 않다. 혼자 눈치 보며 초콜릿을 까먹기보단, 초콜릿 하나를 반으로 쪼개 친구와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런 아이들로 키울 것이다.

 

그나저나 그날 어묵 트럭으로 날 인도했던 그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난 아직도 그 아이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그 아이가 지금은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제외하기보단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할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자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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