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수 야
청명한 가을의 휴일 아침이다. 잠에서 깬 남편이 마룻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앉아 있다. 밤에 잘 자고 나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내가 묻는 말에 침체된 경기 때문에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도와줄 방법이 없는 나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남편한테는 힘내라며 영혼 없이 얼버무린 후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라는 생각에 서울 은평구에 있는 수국사로 향했다. 수국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축제준비를 하고 있다. 산언덕배기에는 초대받은 연예인 얼굴들이 큼직하게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축제 분위기가 난다. 기도도 하고 축제도 즐기려는 마음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찰은 재건할 당시 대웅보전 법당 외부와 내부 모두 100% 순금으로 지어 노란색의 빛깔이 사람들 눈에 두드러지게 띄었다. 실제는 금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얇은 금박을 나무에 입혀서 지었기 때문에 도적들의 손이 타지 않는다고 한다. 태국 치앙마이를 관광할 때 황금사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곳은 황금종이를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노랗게 보인다고 했다. 이곳 수국사는 시내와 가까이 있어 마음만 내면 언제든지 왔다 갈 수 있는 곳이라 가끔 오는 편이다.
사업이 어려워서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여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기도방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여태까지는 “부처님!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라며 빌었으나 이제부터는 “부처님! 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겠습니다.”로 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무엇을 담을 때는 쉽지만 덜어내려면 매우 어렵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세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한암 스님이 어느 날 하룻밤 묵은 부잣집 주인과의 일화 중에 집 주인이 “스님들은 탁발 나와 늘 보시하라 하는데 있는 재산을 퍼주기만 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니면 본인이 가진 재산을 절약해서 늘리는 게 옳은지요?” 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스님은 “주인어른께서 지금 주먹을 쥔 손을 펼 수 없으면 불구가 되겠지요? 다시 그 손을 오므리지 못해도 불구라 하겠지요? 재물도 이와 같아서 아낄 때는 아끼고 쓸 때는 제대로 쓸 줄 알아야 옳은 일이 됩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부끄러워하며 스님을 극진히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법당에 들어가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했다. 남편의 한숨을 떠올리며 납작하게 엎드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욕심을 냈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 얼굴이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나만 그랬을까? 무조건 사업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경제가 잘 돌아가서 서민들이 노력하는 만큼 걱정하지 않고 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을 빌며 옆 사람을 슬쩍 보았다. 옆 사람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절을 하는데 언제 끝날지 모를 만큼 간절해 보인다. 법당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연등에는 소망을 적은 글들이 삐쭉삐쭉한 모양으로 내 이마에 닿을 것 같다. 몇 년 전 중국 장가계를 여행할 때 봤던 황룡동굴의 종유석을 생각나게 한다. 연등에 달려 있는 소망 글들을 듬성듬성 읽어보았다.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자손을 보게 해 달라고, 건강을 달라는 글, 집나간 사람 돌아오게 해 달라는 등, 사업 잘 되게 비는 글 등등 이들을 보니 일상에서 지나쳐온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끈 힘은 무엇일까? 고개만 갸우뚱거려진다.
축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승복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덤벙덤벙 내려오는 스님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근심도 함께 날려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엉켜서 넘어지기도 한다. 화창한 가을을 맞아 이곳저곳에서 축제가 많이 열리지만 사찰의 축제는 흔하게 접하지 못하였기에 나의 호기심이 스멀스멀 발동된다.
무대 공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초대 가수의 댄스에 푹 빠져 버렸다. 야구 선수 누구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가수는 ‘헤이마마’를 불러재끼는 바람에 관중들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 후 계속되는 힙합 가수의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스님들의 어깨가 균형을 잃은 학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마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소리가 삼각산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한가로이 놀고 있던 새들의 고막이 모두 찢어 졌을 거라고 짐작된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이런 경건한 분위기의 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가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노래와 율동을 보니 날로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소리 질러대는 사람, 구경 온 사람들에게 허기를 달래라고 나눠주는 포슬포슬한 백설기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순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의자가 모자라 까치발을 딛고 뻣뻣하게 서서 본인만 잘 보려는 이기심으로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
아~조금 전까지 법당에서 본 신도들의 엄숙하고 겸손한 자세로 합장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나? 그야말로 공염불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