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들깨탕 만들어 볼까?
최정옥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찬 바람이 불면서 마른 낙엽들이 먼지와 함께 스산하게 날렸다. 하루 종일 추운 날, 까다로운 손님을 만나 힘들게 근무를 마쳤다. 으슬으슬한 느낌에 감기가 올 것 같았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서 뜨끈한 들깨 수제비 생각이 간절했다. 서둘러 멸치육수를 내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찰진 밀가루 반죽을 끓는 멸치육수에 뚝뚝 떼어 넣었다. 감자와 애호박을 썰고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들깻가루를 넉넉히 풀고, 대파를 숭숭 썰었다. 뜨끈한 들깨 수제비 한 그릇에 오려던 감기는 달아나고,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특히 음식에 들깻가루를 넣어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구마 순, 고사리, 취나물, 무청 등 건나물을 물에 불려서 쌀가루와 들깻가루를 넣고 졸이면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이 났다.
친구들과 산에서 놀다 버섯을 많이 따온 날, 엄마가 나를 보시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련하다. 내가 따온 버섯으로 저녁에는 버섯 들깨탕을 먹었다. 쫄깃하고 미끈하며 오도독한 식감이었다. 감칠맛 나는 버섯 들깨탕이 상에 올라온 날,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엄마의 들깨요리 중에서 버섯 들깨탕은 단연 최고였다. 엄마는 들깨탕을 명절과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올렸다. 제사가 끝나면 형제들은 고기와 생선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들깨탕을 한 그릇 먹고 나서야 다른 음식을 먹었다. 우리 집은 자주 가마솥에 들깨죽을 끓였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큰 대접을 들고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나에게 엄마의 들깨탕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었다. 엄마의 젊은 날과 엄마의 사랑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리운 맛, 삶의 위로가 되는 맛이었다. 추운 날씨나 몸이 아프고 힘들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리며 들깨탕을 찾는다.
고향인 전라도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들깨 재배가 활발하다. 이 지역에서는 이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가 발달했다. 들깨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가 잘되고 장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 특히 찬 바람에 움츠러든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속을 편안하게 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뜨끈한 들깨 수제비 한 그릇을 먹고 푹 자고 나면 감기 따위는 멀리 달아나 버렸다. 전라도에 가면 여전히 정식 요리로 들깨탕이 나온다. 나는 그때마다 반찬으로 나온 들깨탕을 한 그릇 비운 후 주요리를 먹는다. 그 고소한 맛이 은근히 좋았다.
결혼 후, 들깨로 만든 음식을 자주 식탁에 올렸다. 감기에 걸려 식욕을 잃은 가족에게 뭉근하게 끓인 들깨죽을 먹였다. 부드럽고 고소한 들깨탕은 명절이나 손님 초대 요리에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만든 들깨탕은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맛에 미치지 못한다. 엄마의 들깨탕에는 엄마의 자존심과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정성을 이제는 내가 따라 한다. 내 가족을 향한 사랑과 정성으로 나만의 들깨탕을 끓인다.
시간이 지나면 내 딸들은 내가 해준 어떤 요리를 기억할까? 찬 바람이 부는 날에는 내가 해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할까? 엄마가 해주던 들깨탕처럼, 추운 날이나 힘든 순간에 먹으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가 되는 음식을 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