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안 점준
독서.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설렘이 가득한 시간이다. 내가 갈 수 없는 무한한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이다. 환경적 여건이나 도덕적 양심에 걸려 하지 못하는 많은 제약 된 생각과 행동에서 일탈 한다. 책들은 서로 다른 울림으로 내게 스며든다. 3월 신학기 시즌에 왠지 나도 어디론가 출발해야 한다는, 아니 무엇이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올해 2월 졸업까지 2년을 쉬지 않고 공부해 왔던 습관이 들어서 인지 왠지 공허했다. ‘독서하자’ 싶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며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을 했다. 마산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모임 직장 반 “울림”을 발견했다. 이 모임은 셋째 주 화요일 7시에 3층 2번 배움 방에서 열린다. 2025년 울림 독서 동아리 선정 도서는 노벨 문학 상 수상 여성 작가 읽기다. 가슴 떨리는 울림을 기대하며 바로 가입을 신청했다.
나는 책을 빌려서 보기보다는 항상 새 책을 사서 내가 처음 읽는 맛을 즐기고 있다. 책은 인터넷에서 아니라 오랫동안 거래했던 서점 사장님한테 주문하면 특별한 서비스가 있어서 모든 책은 그곳에서 주문한다. 3월 추천 도서는 그라치아 텔레다의 “악의 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정답만 찾으며 살지 않았나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잘못된 선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세상에 없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정답인가 보다(다른 두 가지는 비밀, 공짜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너무나 기대됐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서관에서 만든 모임이라 왠지 체계적이고 전문적일 것 같아 더욱 설렜다. 3월 18일 화요일 첫 “울림” 모임이 있는 날, 거제도 출장 일정이 있었다. 모임 시간인 7시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도록 업무를 마쳤다. 내 차에 두 팀장을 태우고 마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뿔싸, 접촉 사고가 났다. 진북 터널에서 정상 속도로 운행했는데 앞 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급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내 차 운전석 에어백이 터졌다. 접촉 사고가 난 것이다. 잠시 이게 꿈인가? 싶어 혼미했다. 정신을 차리고 뒤에 두 팀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당장 응급 조치가 필요한 큰 부상은 없어 보여 차에서 내렸다.
보험 회사와 렉카를 불렀다. 보험 회사에서 내 차 블랙박스를 점검하더니 아무것도 저장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블랙박스와 내 차가 기능상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저 달아 놓아진 상태였다고 한다. 보통 신차를 차주한테 양도할 때 영업 사원이 연결을 해준다면서. 나는 블랙박스가 깜박여서 당연하게 녹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블랙 박스 기기를 부착만 하고서 지금까지 타고 다닌 것이다. 초보 운전자의 운전 미숙과 삼십 년이 넘은 운전자의 차 점검에 미숙으로 결국 난 안전 거리 미 확보로 100% 과실을 판정 받았다. 앞 차 탓할 것 없었다. 항상 안전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뿐만 아니라 이번 사고로 뒷자리에 앉아도 안전띠를 꼭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안전띠를 한 팀장은 이상이 없었으나 안전띠를 안 한 팀장은 2주 이상 병원 치료를 받았다. 공익 광고를 무심하게 흘려듣고 이렇게 경험하며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첫 “울림” 모임을 기대했던 3월, 나는 차 사고로 참석하지 못했다. 첫 만남에 자신 있게 참석하려고 어려운 책을 메모하며 읽었는데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너무나 아쉬웠지만 다음 달 참석하기 위한 준비 했다.
4월의 선정 도서는 펄벅의 대지다. 집에는 우리 아이들이 읽던 주니어 세계 명작과 원서를 번역한 오래된 책이 있지만 나는 모임에서 정한 출판사의 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지 오래된 책이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먼저 인물과 소설 줄거리를 검색해 보았다. 어떻게 서양 여자가 중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나 했더니 어린 시절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중국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중국의 문화와 정서가 실감 나게 표현된 것 같다. 오란에게 장애 아가 있었던 것은 펄벅 또한 장애 아 엄마 마음이 소설에 투영된 것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경기도 부천 펄벅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의 기준이 대지였으며 그 부를 이루기 위해 가족들의 희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과거나 현재나 불변의 법칙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자로서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또한 그 시대 여인들의 사회적 신분에 너무나 큰 안타까움을 느끼고 분노했다.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여성도 있었겠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에게 억눌려 침묵할 수밖에 없던 여인들. 특히 오란의 삶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컸다. 오란의 죽음에선 그동안의 열심히 살아온 내 모습이 오버 랩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 성격과 기질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나보다는 가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내 모습.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과 투자는 항상 후 순위였다. 지금은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삶을 살려고 한다. 내 죽음의 문턱에서 슬퍼하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
4월 첫 모임을 기대하며 도서관으로 갔다. 회장인 듯한 젊고 예쁜 사람이 차와 떡을 준비해 놓았다. 모두 12명이 모인 밤이었다. 제일 많은 수가 모였다고 한다. 연령대는 이십 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회장이 토론을 끌어 나갔다. 사서가 준비한 인물 소개, 소설 줄거리, 생각해 볼 문제들을 프린트 물로 잘 정리된 것을 나눠주었다. 마무리로 프린트 물을 읽고 독서 기록장을 각자 써보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여러 각도의 생각을 표현했다. 친구들과 했던 독서 모임보다 더 적극적인 분위기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렇게 가입해서 책을 읽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준 마산 도서관에 감사함을 느끼다. 가슴 떨리는 울림을 기대하며 책을 읽고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은 일상의 행복이다.
5월에는 “가장 푸른 눈”, 6월에는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었다. 7월인 지금은 “풀잎은 노래한다”를 읽고 있다. 독서 모임이 끝나고 나면 리더가 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단톡 방에 사진과 파일을 올려 주었다. 잘 준비된 도서관에서 가지는 2시간의 모임은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되었다. 독서는 나에게 여행보다 더 가치 있으며 내가 갈 수 없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행복한 여정이다. 학창 시절에 학교 도서관과 멀리 있는 남산 도서관을 이용했으나, 지금은 원하기만 한다면 가까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시설과 환경에서 독서할 수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임을 실감한다. “울림”, 직장인 모임을 통해 갈 수 없는 나라 꿈꾸며 여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