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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편지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5    조회 : 12

가을편지

박승해

엄마한테 갈까? 더 추워지기 전에.”

여름의 끝자락이다. 짙푸른 나무 아래 더위를 피하던 사람들도 이제 햇빛을 찾는걸 보니 더위가 물러가고 있는중이다. 매미의 울음소리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간간히 생명을 다한 숫매미가 가늘게 울다 말고 온몸을 던져 다시 자연에게 돌아가는 걸 보니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여름내 안락했던 안방이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는 가을을 거부한 매미의 찢어진 날개로 가득하다.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엄마는 그곳에서도 평안한 미소로 따가운 햇살조차 부드럽게 만들고 계시리라.

덥다‘ ’답답하다’ ‘보고싶다’. 한번쯤은 꿈에라도 오실 만한데 네 명의 딸들 누구도 최근들어 엄마를 보지 못했으니 참 무심하신 엄마다. 계절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도 엄마라는 이름은 시도때도 없이 불쑥 생각나고 그리움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언제 갈까?”

뜬금없이 언니가 엄마에게 가자고 한 말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마도 엄마의 장녀 사랑이 이제는 반대로 장녀의 엄마 사랑으로 바뀐 것이리라. 엄마와 가장 가까웠던 언니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짙지 않을까?

언니는 참지 못하고 그리움의 보따리를 먼저 열어 버렸다.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중요한 것을 주로 언니와 상의하곤 했었다. 오빠가 일찍 돌아가신 후, 늘 밖으로만 향하시는 말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가슴이 무너지는 허전함을 언니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둘째인 나는 늘 바빠했고 동생들은 당시 어렸으니까.

그래 가을이 오기 전에 엄마 보러가자, 가자

누가 운전 할까? 내가 할까?”

언니의 한마디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이 분주했다.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이천 호국원으로 달려갔다. 살림쟁이 언니는 꼼꼼하게 챙기는 집안일을 모두 뒤로 미루고, 동생은 교회 행사로 인한 권사님들과의 약속을 미루었다. 직장이 있는 나도 급한 일을 처리한 후 휴가를 냈다. 미국 동부 끝자락에 사는 막내는 어쩔 수 없이 카카오톡으로 동행을 한다.

정말 박씨 자매는 실행력은 끝내 준다니까!”

형부의 엄지척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준비와 실행에 그다지 많은 생각이나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엄마와 아버지와 관련한 일들은 거의 ‘NO’ 라는게 없다. 무조건 ‘OK’ 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있어서 부모님의 일은 우선순위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두 분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부터 특히 더 그렇다.

아버지와 엄마는 합장하여 함께 호국원에 계시지만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항상 엄마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런데 항상 엄마가 먼저 생각이 나는 걸요
어쩌면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슬픈 그리움이 그렇게 만드는게 아닐까?

목요일이라 출근 시간을 피해 10시에 출발을 했는데도 구리에서는 좀 지체를 했다. 동생이 차를 운전한다고 해서 나는 얼른 당일 자동차 보험을 가입했다. 한사람이 장시간 운전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원데이 자동차보험은 큰 도움이 된다. 나의 빠른 보험 가입에 동생은 믿기지가 않았나 보다.

그런 게 다 있어? 어디 봐봐
하루 전에 가입해야 하는 거 아냐?”

좀 더 오랜 운전한 내가 하는게 좋아”.

운전대를 주지 않으려는 동생에게 문자로 전송된 보험가입증을 보여 주고서야 겨우 양보를 받았다. 동생은 지나치게 조심 운전을 한다. 차선 변경도 잘 안하는 만만디형 운전자이다.
언니와 동생은 내가 호국원 다음 코스를 미리 궁리해 둔 것을 모른다. 어젯밤 지도를 보며 근처에서 가을바람을 미리 만날 수 있는 곳을 확인해 두었다.

언니는 살림을 너무 잘 하느라, 동생은 교회일을 하느라 계절이 주는 경이로운 변화를 잘 느끼지를 못하는 무덤덤한 성격이다.

엄마에게 가는 길은 수월했다. 중부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렸고 우리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이천 호국원은 수많은 국가의 영웅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였기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국가의 보호하에 모셔져 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만나는 태극기와 파란 하늘은 수채화 한 폭 같다. 선명한 파란 하늘에 굵은 붓으로 툭툭 터치한흰 새털 구름이 지금이 여름의 끝이자 가을이 시작 되었다는걸 알려주고 있다.

동생 손에 들린 흰 국화 한 다발이 하얀 구름과 닮았다. 저 구름이 가을바람 타고 날아가 꽃을 좋아 하는 부모님께 한 아름의 꽃을 전달해 줄 것 같다.

언니는 평소 운동을 안하는 편이라 아까부터 몇 번이나 쉬어서 언덕을 오른다.

야 야, 조금 기다리면 버스 올 거야, 그거 타고 올라가자

원내를 순환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리자는 언니 말에 우리는 걸어야 한다고 이 정도는 걸어야 한다고 언니를 설득했다. 제법 경사진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올라와 헉헉대는 언니를 밀면서 올라갔다. 언니에게는 이것도 운동이니까.

엄마, 아버지 저희 왔어요.”

사진 속 부모님은 늘 환하게 우리를 반기신다. 이 한 마디를 위해, 우리를 보고 씽긋 웃어주는 부모님을 보기 위해 한 달음에 달려온 길이다. 제일 늦게 올라왔어도 언니는 장녀로서 제일 먼저 인사를 한다. 예수님의 무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요한은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가도록 양보를 했다. 가장 어린 막내 요한은 가장 연장자이자 예수님이 반석으로 세우신 베드로를 먼저 들어가게 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언니에게 첫 인사말을 양보한다. 동생이 올려드린 꽃도 언니의 손을 거쳐 부모님 앞에 더 가지런히 세워진다. 언니는 침착하게 가져온 손수건으로 유리의 먼지를 닦아낸다.

한참 동안이나 우리는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고 부모님을 위한 기도의 시간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믿는다. 부모님은 우리의 기도와 소망처럼 하늘나라에서 평화의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아침까지 훈훈했던 더위가 서서히 가시고 있다. 호국원 비탈을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이제 가을이라고 알려 준다. 한두개씩 날리는 이른 낙엽이 바람에 흔들려 엄마의 숨결을 전한다. 그리움으로 텅 비워진 가슴의 한 구멍을 이제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 담아 간다.

엄마 닮은 국화향기가 한참 동안이나 코 끝에 머물러 있다. 나는 안다. 엄마가 6,70년대 그 어려운 시간들을 얼마나 억척스럽게 우리를 키워내셨는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힘들어 하셨는지.

박씨 딸들, 자 이제 정신 차리고 갑시다. 점심 먹으러

어디로 가는데

응 가 보면 알아. 근데 거기 큰 언니가 좋아하는 뭔가가 있어. 기대해.”

이제 언니와 동생을 위한 나의 비장의 카드를 보여줄 시간이다. 갈바람 길목에 엄마 닮은 가을 향기가 머물러 있는 곳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마음껏 떠들고, 마음껏 웃고, 숨겨둔 그리움을 구름 편지에 담아 파란 가을 하늘로 날려 보낼거다. 바람은 우리의 그리움을 천국의 엄마에게 전달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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