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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워진 집은 스치는 월급 같은 것    
글쓴이 : 박나영    26-10-05 09:15    조회 : 497

스마트폰 속 집들은 하나같이 다 모델하우스다.

어딘가 분위기 있고, 무엇보다 짐이 하나도 없다!

저 사람들은 이슬만 먹고 사나? 밥은 안 해 먹나?

“예쁘다. 우리 집도 이렇게 꾸며볼까?”

“이거 하나 놓으면 분위기가 확 살겠지?”

홀린 듯 인플루언서의 피드를 보며 그들이 추천하는 '잇템'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결제 버튼을 누를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이미 파리 시내의 에어비앤비였다. 하지만 택배 박스를 뜯는 순간.

“이걸... 어디다 놓지?”

잔뜩 기대했는데 막상 놓으려고 보니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있고 딸아이의 내복이 뱀 허물처럼 벗겨져 있다. 카메라 프레임에 담으려니 구질구질한 것들이 자꾸 걸려 사진을 찍울 수가 없다. 이게 뭐야. SNS에 올리지도 못하고. 새하얀 오브제가 우리 집에서는 '인스타 감성템'이 아니라 그냥 '예쁜 쓰레기'가 될 뿐. 결국 필요한 건 그들의 ‘템’이 아니라, 잘 치우는 그들의 부지런한 “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물건들을 서랍에 쑤셔 넣고 화면에 걸릴 곳만 싹 치운다.찰칵. 오오. 이 정도면 올려도 되겠다.

하지만 만족감은 딱 5분. "엄마, 나 만들기 할래"라는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식탁은 순식간에 원위치 된다. 좁아터진 집에서 식탁은 밥상이자 미술 책상이고, 남편의 술상이다. 깨끗한 집은 남편 통장에 잠깐 찍혔다 사라지는 월급처럼 스치고 지난다.

 

기계들 뒤치다꺼리하는 일도 지긋지긋하다. 여름이 다 지나도록 선풍기 한 대를 못 닦아 서랍을 뒤지다 결국 청소를 내년으로 미룬다. 비염 가족에게 필수라는 가습기는 물 채우고 닦는 게 귀찮아 방치해 둔 탓에, 밤마다 셋이서 코를 킁킁거린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자책감이 밀려온다. '아, 나는 가짜 엄마, 가짜 주부구나.

정수기 매니저처럼 모든 기계를 관리해 주는 전문가를 모시면 어떨까? 케어 서비스를 다 받기엔 남편의 월급도 내 간땡이도 그리 크지 않다.

 

한때는 나도 정리에 진심이었다.

주방 팬트리에 딱 맞게 사이즈를 재고, 정리함에 식재료를 종류별로 착착 분류했을 때 잠깐 괜찮은 주부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돼 뒤죽박죽. 소면은 왜 세 봉지나 있는 건지, 어떤 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주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집의 모든 수납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꽉 막혀 있다. 물건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살려줘……!”

 

“여보, 휴지 좀!”

“욕실에 없다고? 그럼 지하 창고에 있을걸?”

볼일을 다 보고도 변기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며 한숨을 쉰다.

사실 남편 물건도 많다. 각종 케이블과 공구, 이어폰, 게임기…. 꼬불꼬불한 선들의 추상화 제2편 되시겠다.

나도 할 말은 없다.

언젠가 입을 청바지, 언젠가 쓸 미용기기, 언젠가 다시 쓸 화장품…. 버려야 하는 건 알지만, 손이 안 간다.

‘그냥 버리긴 아까운데...’

그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물건들을 못 본 체 지나친다.

“나는 너를 못 봤어…. 못 봤어….”

그렇게 물건들을 모른척 하던 어느 날, 또 그 분(라이코스)이 오셔서 서랍 하나만 비워 보자고 결심을 했다.

꽉 들어차 열리지 않는 서랍을 힘주어 열어보니 고무줄, 약 봉투, 이름 모를 뚜껑…. 이게 다 언제부터 있던 유물인 건지. 아이와 만들다 만 슬라임 재료도 그대로다. 필요 없는 것들만 남아 있는 서랍. 다 갖다 버리자. 헉헉. 그렇게 한참을 치웠는데도, 왜 바뀐 건 없는 거 같지?

그때, 벨이 울린다. 택배다. 휴…. 또 뭐가 온 걸까.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어질러진 집에서는 쓰기 싫다. 꼭 남이 정리해 준 도서관으로 간다. 집은 난장판인데, 그곳에서 ‘작가가 돼야지’ 꿈만 꾸고 있다.

며칠 전엔 저녁을 준비하다가 키친타월이 떨어져 창고를 뒤지는데 어디서 굴러온 것들이 우르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으아아아악”

그걸 주워 담으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하아…. 이런 집에서 작가는 무슨 작가!”

내가 화난 건 쏟아진 물건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난장판에서 ‘작가’라는 우아한 꿈만 꾸고 있는 내 꼴이 가소로워서였다, 다 버릴까? 이사가 답인가? 대출금이 얼마였더라? 한참 망상을 떨다 결론을 내린다. 몰라, 고민해서 뭐 해.

쏟아진 물건들을 발로 대충 쑤셔 넣고는, 1킬로도 안 된다는 노트북을 충전선에서 뽑는다. 그러고는 핑크색 파우치에 야무지게 담아 집을 나서기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문을 열고 코에 바람이 들어가는 순간, 답답했던 숨이 탁 하고 풀린다. 그대로 액셀을 밟아 도서관으로 튄다. “다 지워져라!” 주문을 외우면 머릿 속은 깨끗이 리셋되고,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문을 열기만 하면,

세일러문의 변신처럼, 얍!

집안일에 쩔어 있던 주부에서 눈빛이 반짝거리는 작가지망생이 된다.

희한하게도 도서관에서는 글이 술술 나온다. 집안일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안 나오는데, 하얀 모니터 위에선 어떻게든 답이 보인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처박아둔 창고 짐과 아까보다 더 높이 쌓였을 설거짓거리는 잠시 잊기로 한다. 글을 쓰며 채울 나의 '자존감 버프'로 지긋지긋한 싱크대 앞에 다시 설 용기가 생길테니까.

나에게 값비싼 명품 백보다 간절한 건, 언젠가는 이뤄질 '박작가'라는 꿈, 그리고 꿈을 위한 시간을 아끼지 않는 작은 사치, 그 시간이 명품백보다 더 빵빵한 나만의 빽이다. 나는 집 앞으로 돌아와 그 빽을 등에 업고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나를 기다리는 건 여전히 산더미 같은 집안일일지라도, 나를 밀어주는 빽 덕분에 지루하기만 했던 집안일이 견딜 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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