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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맥주 한 모금    
글쓴이 : 박나영    26-10-05 09:16    조회 : 6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켠다. 주말만 되면, 알고리즘이 먼저 집 밖으로 나간다.

다들 또 어딜 갔나 보다. 남들은 벌써 산으로, 바다로, 카페로 나가 있었다.

우리 집은…. 조용하다.

“오늘은 안 나가면 안 돼?”

남편이 말한다. 딸도 덩달아 말한다.

“난 집이 좋은데.”

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늘 나만 초조하다.

일주일 동안 쌓인 ‘나가요 병’을 주말에 풀어야 하는데,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기분.

주말을 허투루 보내면 나까지 ‘별로’가 되는 거 같단 말이다.

그래서 또 휴대폰을 켠다. 남의 주말을 구경하면서, 나의 주말을 계획한다.

“이번 주말엔 여기 갈래?”

인스타에서 본 핫플.

아이들이 커다란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 떠 있고, 분홍빛 인테리어 속에서 엄마들이 웃고 있다. ‘여기다!’ 싶었다. 남편과 딸을 꼬드겼다.

“여기도 막상 가보면 별로인 거 아냐?”

“아니야, 내가 다 봤어. 진짜 예뻐.”

결국 세 사람, 서로 다른 표정으로 출발. 나는 설렘, 남편은 체념, 딸은 귀찮음.

도착하자마자 주차 전쟁이다. 입구에서부터 줄이 끝도 없다. 대기 시간만 30분.

겨우 입장하니 사진으로 봤을 땐 환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체험은 10분 만에 끝났다.

음식은 비싸고, 맛은 그저 그런. 딸은 금세 “엄마, 언제 가?” 냐고 한다.

결국 사진 몇 장 찍고 나왔다. 다행히 사진은 잘 나왔다.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심드렁하게 업로드 했다. 해시태그 몇 개로 채워진, 허전한 만족감.

#핫플 #예쁜카페#아이랑갈만한곳

카페에서 1시간도 못 채우고, 집에 오는 길, 남편이 한마디 했다.

“제대로 못 먹었는데 우리 잘 가는 빵집이나 갈까?”

“그러게. 거기나 갈까?”

그 빵집은 작고 평범하다. 그래도 나름 소금빵으로 유명한 집.

딸이 좋아하는 쿠키랑 당근 빵도 있고. 우린 늘 창가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여기 소금빵이 최고야!”

딸은 삐뚤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소금빵을 와앙 하고 깨무니. 겉이 얇게 부서지며 고소한 풍미가 전해진다. 테이블은 너덧 개 정도. 음악 소리도 편안하다. 사진은 안 찍는다. 대신 말이 많아진다.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초등학교 고학년, 한창 멋 부릴 시기에 내 포지션은 늘 ‘어중간함’이었다. 예쁘지도, 그렇다고 아예 안 꾸미지도 않는 어중이떠중이.

예쁘고 날씬한 아이들이 세련된 옷을 입고 어른 흉내를 낼 때, 엄마가 시장에서 사준 애매한 남방이나 반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짧은 다리와 유난히 긴 얼굴만 도드라졌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거울 속의 긴 턱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내가 싫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네 살 위 오빠는 내 마음도 모르고 “돼지야, 꿀꿀”거리며 놀려댔고, 부모님은 그저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며 눈을 붉히는 나를 타박했다. 

당시 개그우먼이던 홍O경 씨만 나오면 오빠는 나를 닮았다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그 말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싫다고 말해도 거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거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방문을 닫았다. 쾅, 소리가 나게 아주 크게. 상처받은 만큼 크게, 누군가 "왜 그러냐"며 문을 툭툭 두드려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진짜 들어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문고리를 꼭 붙잡고 있는 모순된 아이.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거실은 평온했다.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TV 속 예능 프로의 웃음소리만 경쾌했다,

남들이 보기엔 참 화목하고 부족함 없는 집이었는데, 그 울타리 안에서 나만 혼자 주파수가 안 맞는 라디오처럼 지직거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깨지기 쉬운 얇은 유리 같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는 깨진 유리를 품에 안고 스스로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나고, 나는 왜 별것도 아닌 걸로 아플까. 그저 내가 못나서, 남들처럼 매끄럽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바보라고만 생각했다. 내 방은 나를 지켜주는 요새이자, 동시에 나를 자책하게 만드는 감옥이었다.

깨지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중 고등학교 시절을 관통했다. 

노는 애들 틈에 끼기엔 간이 작고, 공부하는 애들 틈에 끼기엔 엉덩이가 가벼웠다. 적당한 자리에서 눈치만 보는 게 내 일과였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쟤랑 진짜 친해지고 싶은데...”

나보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을 보면 그 활기가 눈부셔 눈이 멀 것 같았다.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들을 따라 하고 싶었지만 늘 역부족이었다. 다리는 짧고, 얼굴은 길고, 나는 못났으니까. 그 반짝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주눅 들었다.

결국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관계는 모래알처럼 빠져나갔고, 나는 하나둘 친구를 잃어갔다.

고등학교 졸업식, 나는 줄 가운데에서 혼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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