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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거워진 세계를 조이는 손끝    
글쓴이 : 김현숙    26-07-07 20:35    조회 : 22

   

 헐거워진 세계를 조이는 손끝                                                                                                      김시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울어진 축 위에서 세상이라는 풍경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욕망을 투영해 삶을 과장되게 확대해 보고, 어떤 이는 불안의 막에 가려 다가오지 않은 내일을 흐려 트린다. 중심을 잡지 못해 일상이 온통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소한 굴절에도 마음이 쉽게 부서지고, 타인의 시선에 휘청 거리며 삶이 거칠게 덜커덕거리던 청춘의 초입이었다. 세상과 나 사이의 초점이 맞지 않아 유독 길을 헤매던 그때, 삶의 외연을 나직하게 맞춰주던 특별한 좌표를 발견했다. 화려한 이정표도 없이, 도심의 소란스러운 대로변을 벗어난 골목 끝자락에 담담하게 엎드려 있던 작고 오래된 안경점이었다.

    처음 그곳의 문을 밀었던 날의 풍경은 기억의 심부에 각인되어 있다. 안경테의 이음새가 헐거워진 탓에 걸을 때마다 시야가 코끝으로 흘러내렸고, 사물이 자꾸만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새로 맞추기에는 청춘의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고, 그대로 버텨내기에는 당장의 걸음조차 위태롭던 서글픈 오후였다. 낡은 알루미늄 문을 밀고 들어서자, 문틀에 매달린 작은 황동 종이 고요한 내부의 공기를 밀도 있게 흔들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방, 벽면의 빛바랜 진열장에는 세월을 비껴간 유물들이 자로 잰 듯 완벽한 수평을 이루며 걸려 있었다.

   낮은 작업대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무언가에 몰두하던 주인은 내 기척에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장황한 질문은 없었다. 그는 손때 묻은 수리 도구를 묵묵히 집어 들었을 뿐이다. 그의 투박한 손끝에서 반짝이던 작은 드라이버는 마치 제자리를 잃고 흩어진 시간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지휘봉처럼 보였다. 핀셋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나사를 집어 올리고, 각도를 수평으로 맞추는 정밀한 움직임에는 한 치의 비틀림도 없었다. 단 몇 분 만에 헐겁던 사물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단단한 결속을 되찾았다.

    비용을 묻는 내게 그는 초점을 정성스럽게 닦아 건네며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정도야 금방이죠. 돈 받을 일 아닙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다정한 목소리가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온기처럼 남았다. 단순히 물건이 고쳐져서가 아니었다. 위태롭던 자존감과 일상의 소리까지 그 정교한 손길로 단단하게 조여진 듯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마음의 평형이 깨질 때마다 발걸음은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골목 끝으로 향했다. 먼지나 얼룩으로 흐려진 시야를 닦으러 가는 날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뒤틀린 각도를 바로잡으러 가는 날도 있었다. 주인은 타인을 편안하게 만드는 묘하고도 깊은 체온을 지닌 분이었다. 가게를 찾은 이의 은밀한 사생활을 무례하게 캐묻거나 원치 않는 조언을 늘어놓으며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손님을 장사치로만 대하며 멀리서 서서 방관하지도 않았다. 딱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다정한 안부를 물었고, 딱 외롭지 않을 만큼의 온도로 이방인을 맞이했다.

   그가 내려주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안경점에 잠시 머무는 동안, 바깥세상의 소음과 속도전 속에서 잔뜩 팽팽해져 있던 신경은 유순해지곤 했다. 그곳의 공기는 세상의 시계와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머무는 짧은 순간조차 내게는 밀도 높은 내면의 치유의 시간이었다.

    유월의 어느 장마철 오후가 사진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세탁소에 옷을 드라이클리닝으로 맡기고 돌아가려던 찰나,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억수 같이 쏟아지는 폭우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우산도 없이 처마 밑에 서서 들이치는 빗물에 어깨를 적시며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던 내게 그는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며 당신이 앉던 자리를 내주었다. 달콤한 믹스커피 한 잔과 함께였다.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가 아늑한 청각적 배경이 되어 내부를 가득 채웠다. 올해 장마는 유독 길고 지루하다는 이야기, 골목 어귀의 소박한 변화들, 세상 살기가 갈수록 팍팍해져 사람들이 여유를 잃어간다는 나지막한 넋두리가 비릿한 빗소리 사이를 조용히 흘러 다녔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날 나누었던 대화의 세세한 문장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증발했지만, 공간을 채우던 따스한 향과 시간의 다정한 질감만큼은 여전히 살갗에 지워지지 않는다. 외로운 도시 생활에서 내가 받아본 가장 때 묻지 않은 환대였다.

   어느 날은 내 부주의로 안경테가 형편없이 꺽여버리는 사고가 있었다. 자다가 머리맡에 둔 것을 몸으로 깔아뭉갠 까닭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회생 불가능해 보였고, 중심축이 완전히 뒤틀려 있어 이제는 정말 새로 맞춰야겠다고 체념 섞인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부서진 안경을 한참 동안 지그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연장을 집어 들었다.

불을 피워 뿔테의 온도를 올리고, 미세하게 뒤틀린 금속의 수평을 맞추고, 다시 나사를 조여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은 곁에서 지켜보기 미안할 정도로 긴장을 하고도 정성스러운 의식 같았다.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미덕이 된 대량소비의 시대, 그의 손길은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장인의 몸짓이었다. 투박한 손길을 수십 번 거치며 물건은 놀랍게도 천천히 원래의 정직하고 올바른 모양을 찾아갔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내 얼굴에 그것을 씌워주고는 웃었다.

 아직 더 쓰겠네요. 뼈대가 튼튼해서 쉽게 안 부러집니다.”

   참았던 안도의 숨과 함께 울컥하는 감정이 터져 나왔다. 단순히 사물의 수명에 대한 판정이 아니었다. 조그만 시련에도 쉽게 지치고 꺾여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자책하던 내 삶을 향해, 너는 아직 괜찮다고, 여전히 단단하니 조금 더 버텨낼 수 있다고 건네는 묵직한 생의 위로였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 같던 위로의 처소 에도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세월이 흐르며 골목의 풍경은 자본과 유행의 속도를 따라 빠르게 변해갔다.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던 오래된 점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고,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차가운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자리를 채웠다. 오직 안경점 만은 소리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익숙한 풍경이 내 삶의 울타리처럼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막연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퇴근길에, 평소처럼 나는 안경점을 지나쳐서 가야 했다. 항상 환하게 불이 켜 져 있던 유리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불 꺼진 어두운 창 한가운데에는 투박한 필체로 급하게 적힌 흰 종이 한 장이 쓸쓸하게 붙어 있었다.

 '부고(訃告)’

   단 두 글자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날아와 눈을 찔렀다. 아래 적힌 이름 석 자를 소리 내어 읽었지만, 머리도 마음도 눈앞의 현실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던지자, 주인을 잃은 낡은 작업대와 의자,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 진열장들이 그곳에 멈춰 있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 오직 온기를 불어넣던 단 한 사람만이 증발하듯 사라져 있었다.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인 빈 의자가 그렇게 슬프고 쓸쓸해 보인 적은 단연코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먹먹함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안경을 벗어서 테의 이음새를 만져보았다. 손끝에 작고 단단하게 박힌 나사가 걸렸다. 그가 이 세상에 남겨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정성껏 조여주었을 친근한 작품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단순히 시력을 보정하는 기구만 고친 것이 아니었다. 매일 미세하게 흔들리는 타인의 불안한 일상을 붙잡아 주었고, 조금씩 기울어지는 소외된 이들의 마음의 중심을 바로 세워주었다. 물건이든 관계든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 낡고 부서진 것들을 다듬고 고쳐서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고쳐 쓰는 삶'의 숭고한 가치를 몸소 보여준 철학자였다.

   거창한 업적이나 이름을 세상에 남긴 이는 아니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하고 완강하게 지켜낸 위대한 수호자였을 뿐이다. 누군가의 흐려진 안경을 고치고, 안부를 물으며 타인의 하루를 조금 더 선명하고 밝게 만들어주던 사람.

    지금도 나는 마음의 초점이 흐려질 때면 골목을 찾는다. 여전히 문이 닫혀 있는 그곳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은 더 이상 물리적인 소리를 내며 울리지 않지만, 마음의 귀에는 그날의 맑은 딸랑임이 깊은 잔향 으로 맴돈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남긴 수리 되어진 안경을 보게 되었다. 공간에 문신처럼 박혀 영원히 흐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 소중한 단골 집이 내게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은, 세상을 절망하지 않고 순순히 바라보게 하는 배려가 보이는 그런 곳 이였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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