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아
가끔 새벽녘에 잠을 깬다.
제법 잤다고 느껴질 때는 다시 잠들어도 아니어도 그만인데 반대의 경우에는 시간을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쉽게 잠 못 들어 수면도, 시간도 손해 본 느낌으로 바쁜 아침을 맞기도 한다. 오늘 새벽 별생각 없이 다시 잠을 청하는데 아랫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끝내 어설픈 아침이 되고 말았다. 아이라고 하면 당사자에게 좀 미안할 일일까? 스무 살이라고 한다.
큰아이의 수능이 50일쯤 남은 가을이었다.
4년 반의 외국 생활 탓에 보통의 이곳 아이들보다 늦게 입시 공부를 시작한 큰아이가 이제 좀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을 때 나 몰라라 냉정히 가기만 하는 시간을 할 수만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었다. 입시생에게도 8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은 필수라며 잠이 많은 나를 닮았는지 잠 욕심을 부렸다. 수면권을 보장해 달라 한들 8시간은 언감생심, 6시간 남짓의 수면시간이라도 지켜주려고 다른 식구들도 애쓰던 중이었다. 어려서부터 자는 일, 먹는 일로 참 많이도 나를 괴롭혔던 아이가, 컸다고 해서 피곤하면 아무데나 쓰러져 잘 수 있는 쉬운 아이로 변하지는 않았다. 6시 10분쯤 아이를 깨우자 4시쯤부터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잠을 설쳤다고 했다. 제 방에 있을 때에도 거실에 있는 남편과 내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려야 할 정도로 청력이 남다른 아이다. 어린아이는 아닌 것 같고 어른 목소리 같다고 했다. 부족한 수면시간을 걱정하는 나에게 “괜찮아요. 학교에서 좀 졸면 돼요.” 하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부모로서 기성세대로서 편치 않은 아침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가 점점 자주 들리며 나까지 예민해져 소리의 진원지를 추측해 보았다. 2~3주 전쯤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올 세입자라며 바닥공사를 하는데 동의서에 사인 좀 해달라며 찾아왔던 한 여성이 생각났다. 세입자에게 직접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다는 임대인이 좀 별나다 했었던 기억과 함께 평소 들리지 않던 새로운 종류의 소음이 발생했다면 분명 그 집일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예민한 문제에 함부로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층간소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꼭 바로 아래층이 아닐 수도 있으니 확인을 부탁했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왔다며 인터폰 화면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굳이 찾아올 것까진 없는데,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그날 그 사람이 맞았다. 사인을 했던 날 남편에게 나와 나이는 비슷해 보이는데 왠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더라 했던 것도 생각났다.
여성은 여전히 세상 시름을 다 안고 사는 사람의 표정으로 “정말 죄송해요. 저희 아이가 좀 아픈 아이예요. 스무 살이고 남자아이인데 많이 시끄러웠어요? 평소에 수면제를 먹여 재우는데 어제는 깜빡했나 봐요. 너무 죄송해요. 아이가 고3이라던데 하필 저희가 이사 와서 어떡해요?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도 공부는 시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 동네를 못 떠나고 있어요. 죄송해요.”
연신 미안하다 하는데 내가 더 미안하고, 아이도 가여운데 생판 남에게 미안하단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엄마인 그녀가 또 가여워 내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
그 와중에 나는 어떤 말이 최상의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아니 최고로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다 끝내 “사정을 이야기하면 저희 아이들도 다 이해할 거예요.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힘내세요.” 하는 평범한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수험생의 운명인 내 아이를 생각해 “자는 시간에만 좀 신경 써 주세요. 부탁드려요.”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할 수밖에 없는 말들만 많았다. 그녀처럼 나도 엄마인 까닭에.
시끄러우면 언제든 연락 달라며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쉽게 문을 닫지 못하고 아랫집 대문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조용히 들어왔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나만 쓸쓸한가? 습관처럼 피하게 되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일주일쯤 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그녀와 마주했다.
“강아지 너무 귀여워요.” 하자
“제가 강아지와 이러고 있네요.” 한숨이 긴데
“...강아지라도 키우셔야죠.” 하고 말았다.
난 정말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 위안, 심리적 안정, 행복지수 뭐 그런 현란한 말들 많았을 텐데. 지나쳐 내 갈 길을 가며 얄밉게 튀어나온 옆통수를 쿡 쥐어박고 싶을 만큼 바보같은 말이었다.
스무 살 아이의 울부짖음이 점차 음이탈 난 노랫소리쯤으로 무뎌지며 ‘또 뭐가 마음에 안들어 저럴까?’ 그러려니 하게 될 즈음, 이번에는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천장을 뚫고 들려 오는데 의심의 여지 없이 위층이었다.
꽤 긴 시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걸로 봐서 화가 많이 나기도 했고, 미천한 내 언변과는 달리 수려한 말솜씨를 가진 사람인가보다 생각했다. 여자 목소리 사이로 드물게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리긴 해도 누가 들어도 맥을 못 추는 것이 좀 안타까울 정도였다. 최근 들어 두 번째였다.
그러다 ‘부부가 혹은 모자가 좀 격하게 싸울 수도 있지.’ 그들의 대담함에 웃음이 났고 ‘안면顏面도 있는데 그냥 모른 척 분노의 랩(rap)쯤으로 여길 수밖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