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따라 옷을 사시나요?
이지영
2024년 봄, 정독 도서관 주최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저자의 강연을 들었다. 저자는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 일하며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옷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그가 왜 옷을 사지 않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5년 전 미국에 있을 때 샀던 옷인데, 가격이 얼마인지 맞혀 보시겠어요?”
하얀색 짧은 겨울 패딩으로 목 옷깃 부분에 베이지색 털이 수북이 달려 있어 비싸 보였다. “20만 원이요.”, “30만 원이요.”, “100만 원은 돼 보이는데요.”
나는 적어도 몇십만 원은 하겠지 생각했다. 할인 행사를 하는 상점에서 샀다는 그 옷의 가격은 1.5 달러, 한화로 계산하면 2천 원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저자는 옷이 왜 이렇게 저렴한지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료가 싼 합성섬유의 등장,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값싼 환경오염 벌금, 부담 없는 폐기 등이었다.
나는 노동력 착취에 눈길이 갔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에서 샤바 의류공장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8층짜리 건물이 무너져서 노동자 1,100여 명 이상이 사망했고, 2,500여 명이 다쳤다. 사고 하루 전 건물 벽에 큰 균열이 생기자, 경찰은 대피 명령을 내렸지만, 건물주가 이를 묵살한 결과였다. 사고 당일 공장장들은 건물에 들어가길 주저하던 노동자들에게 당장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못 이긴 노동자들은 결국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건물더미에 깔리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서구 의류 브랜드들의 저가 경쟁이 노동자들을 열악한 근로 환경에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제기되었다. 하루 평균 1인당 1,000여 벌 이상을 만들어야 했던 그들의 당시 시급은 260원이었다. 옷 상표 생산지 표기에서 방글라데시를 종종 보곤 했는데, 그 옷들은 시급 260원 노동자들의 땀방울과 희생이었다.
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은 5% 정도만 국내에 남고, 나머지는 해외로 수출된다. 헌 옷을 처리하는 비용보다 수출하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가나,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해외로 간 옷들은 일부만 소비되고, 나머지는 쓰레기로 방치된다. 개발도상국에서 만들어 들여온 옷이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 내가 버린 수거함의 옷이 남미 사막에 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쓰레기 산에서 소들이 여물 대신 버린 그 옷을 씹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양이 너무 많아 태우지 못한 옷들은 바다로 흘러간다. 바닷물 속에 녹아든 섬유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먹이가 되고, 결국에는 해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구조이다.
저자는 자신이 실천하는 새 옷을 사지 않고 지내는 방법을 소개했다. 묵은 옷을 활용하고 가족, 친구, 동료들과 입지 않는 옷을 교환하거나 중고 가게를 이용한다. 또, ‘소유한 5벌 중 1벌은 입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21% 파티’ 같은 옷 교환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강연을 들으며 왜 옷을 샀는지 구매한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가격이 저렴하거나 인터넷 광고를 보다가 큰 고민 없이 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어서 사기도 한다.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정보를 수집하여 또 다른 비즈니스를 창출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을 점점 더 낮추고, 1+1행사나 무료 반품, 당일 배송 등으로 소비를 부추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듣던 청중 한 분은 앞으로 청바지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느 분은 빨래할 때 미세플라스틱이 덜 나오도록 친환경 소재의 옷을 사기로 했다. 나는 최근에 옷장에서 잠자고 있던 옷들을 정리했는데 기부단체에 보내 장애인 일자리 지원에 보탬을 주기도 했다. 기증한 옷들이 새 주인을 만나 자원 순환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듯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실천해 보면 어떨까.
옷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옷의 이미지로 나를 더 나답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유행을 따르다 보면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살릴 수 있을까. 옷이 단순히 현재를 즐기고 소비하는 대상이 아닌, 소유하며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가치소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옷을 구매할 때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는지, 광고에 현혹되거나 유행 따라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