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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의 온기    
글쓴이 : 서동관    26-06-23 00:28    조회 : 107

천원의 온기

서동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벌써 보름째 휴일 없이 맞이하는 강행군의 아침이다. 피로에 구겨진 몸을 일으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남아 있던 잠을 쫓아냈다. 그 순간 두 번째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면서 간밤에 온 문자와 핸드폰 일정표를 확인했다. 예천동 아파트 도배, 동문동 빌라 실측, 기우와의 저녁 약속. 메모가 적힌 사각형 박스 안에 깨알같이 적힌 빨간색 '어린이날'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아, 오늘이 어린이날이구나.' 어렸을 때는 생일만큼이나 손꼽아 기다렸던 날이었다. 물론 시골의 어린이날은 선물이나 용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은 어린 마음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어서 기다려졌다. 빨간색 글씨를 보기 전에는 다를 게 없던 하루가 조금은 새롭게 다가왔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까맣게 잊고 있던 노래가 입에서 맴돌았다. 

방송에서는 연휴 나들이 인파로 인한 교통 정체 상황을 보도하지만, 도배업을 하는 자영업자에게 연휴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업계의 사람들에게는 일이 없는 날이 곧 휴일이다. 즐겁지 않은 휴일.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현장으로 가기 위해 도배지를 차에 싣는다. 풀 바른 도배지를 싣기 편하도록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아파트 1층을 골랐다. 도배지를 싣기 위해 집과 차를 오가다 저만치서 걸어오는 대여섯 살 남짓한 사내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 보는 꼬마였다. 장난기 가득한 꼬마의 얼굴에는 무엇을 하다 왔는지 코끝에 하얀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똘망똘망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속 낯섦을 풀어주었다. 그런 꼬마가 나를 보더니 이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배꼽인사를 건넸다. 의외였다. 전혀 인사할 것 같지 않게 생긴 꼬마에게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꼬마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랑하듯 말을 걸어왔다. "오늘 아빠와 함께 캠핑을 가요."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꼬마는 갑자기 받은 질문에 생각나지 않는지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태안 바닷가로요." 꼬마는 골똘해진 짧은 틈에도 신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짐을 옮기는 손이 바쁘긴 했지만 인사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고, 캠핑을 앞둔 꼬마의 설렘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꼬마에게 내밀었다. 

"자, 이거 받아. 캠핑 갈 때 맛있는 것 사 먹어라." 꼬마는 두 손을 뻗어 만 원을 받아 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지만, 왠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용돈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새였다. 짐을 다 싣고 나는 차에 올라 아파트를 빠져나오며 백미러로 꼬마를 보았다. 그 꼬마는 아직도 내 쪽을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50미터쯤 지나는 동안 끝내 닿지 못한 시선으로 차를 바라보던 꼬마는 코너를 돌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꼬마는 보이지 않지만 그 눈망울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용돈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뭔가 말을 담고 있는 그 표정이 자꾸 눈에 밟혔다. 당장이라도 되돌아가서 '넌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하고 묻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날이 떠올랐다.

1980년 5월경의 일이다. 국민학교 3학년 학기 초, 홀어머니의 직장 때문에 서산 고북면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어머니는 고북국민학교에서 전학 상담을 받으셨지만, 1학기를 끝내고 2학기에나 전학할 수 있어서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서산국민학교로 통학해야만 했다. 여느 날처럼 고북에서 버스를 타고 서산으로 가던 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이 서산까지 가는 먼 길을 달래주었다. 해미 정류장에 도착하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올라탔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은 백발의 할아버지는 좌석을 둘러보는 듯 두루두루 시선을 옮겼지만,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맞은편 의자 손잡이를 붙잡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당시 버스가 다니는 길은 '신작로'라고 해서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아 차가 지나고 나면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길은 군데군데 파여 있어 차가 덜컹덜컹 춤을 추듯 흔들렸다. 의자에 앉은 승객은 그나마 버틸 만하지만, 서 있는 승객은 몸이 더 크게 흔들려 중심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버텨야만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옷깃을 살짝 잡으며 조용히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양했다. 의자는 오히려 내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항상 서서 통학하기에 익숙하다며 할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주고받은 끝에, 할아버지는 끝내 나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두루마기 자락의 매무새를 주섬주섬 다듬은 후, 나를 올려다보며 나이를 물었다. 열 살이라고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 녀석, 네 고집을 꺾지 못해서 앉기는 했다만 고맙구나. 이거, 착해서 주는 거니 맛있는 거 사 먹어라." 할아버지는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낡은 검은색 동전지갑에서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손으로 접은 돈을 빳빳하게 펴서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돈을 그렇게 접은 걸 보면 읍내에 나가서 출출하고 갈증이 날 때 마시려고 했던 막걸리 값이거나,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려고 접어 넣은 비상금 같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것을 나에게 주었던 것이다. 어른이 주는 것이니 감사히 받기는 했지만, 기쁨보다 얼떨떨함이 앞섰다. 당시 천 원이면 짜장면 세 그릇을 사 먹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용돈이라고 해봐야 백 원짜리 하나 받으면 잘 받던 시절에 천 원을 받게 된 것이다. 유난히 어른을 어려워했던 나는 얼떨결에 받은 돈을 손에 쥔 채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했을 뿐, 마음속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 같아 가는 내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차창 밖의 경치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가끔 할아버지를 힐끔힐끔 훔쳐볼 뿐 서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큰돈을 받고 복잡해진 마음과는 달리, 돈을 쥐고 있는 내 손은 할아버지의 온기로 달궈져 있었다.

오늘 아침, 백미러 속 꼬마의 모습이 그토록 뭉클하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그 꼬마에게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오늘 꼬마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만 원권 한 장이기보다는 46년 전,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이름 모를 소년의 손에 전해주었던 ‘온기’는 아니었는지. 그 온기가 긴 세월을 돌아 오늘 아침 꼬마의 손에 닿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뭔가 말을 담고 있는 꼬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된다면 캠핑 다녀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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