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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 가을, 페달 위에 새겨진 궤적》    
글쓴이 : 박희래    26-04-18 12:56    조회 : 45

자전거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 가을, 페달 위에 새겨진 궤적

 

박희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꾸만 무언가를 놓아주는 과정인가 보다. 기차 시간에 쫓겨 휴대폰과 카드를 두고 오고, 선글라스와 장갑마저 빈손이 되는 날이 잦아진다. 그 허전함을 채우려 가을의 복판으로 자전거를 싣는다.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기에 더욱 분주해진다. ITX 청춘열차를 이용하려면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탈 수 있다. 용산역을 떠나 춘천역으로 향한다. 청춘열차의 매력은 자전거를 열차 안 거치대에 싣고 안락한 좌석에서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춘천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안개는 신비로운 붓놀림으로 산허리를 감싼다. 철로를 따라 나는 작은 기차역과 고요한 마을마다 내려앉은 붉게 물든 가을 단풍은 그 어떤 필터로도 재현할 수 없는 곱고 선명한 빛을 품고 있다. 찰칵하는 카메라보다 눈과 마음에 더 깊이 새겨지고 가을의 숨결에 빠진다.

  춘천역에서 라이딩을 시작해 의암호에 접어들면 소양강 처녀상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삼악산의 웅장한 능선과 의암호의 잔잔한 물결은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룬다. 호반의 도시 춘천은 가을에 맥박이 더 힘차게 뛰는 곳이다.

  마침 '춘천 국제 마라톤'의 열기가 가을바람을 가른다. 거친 숨을 내쉬는 마라토너들의 의지가 내 폐부 깊숙이 전해진다. 우회로의 데크 길을 지나며 아내와 함께 "화이팅!"을 외친다. 그들이 건네는 찰나의 미소는 가을 햇살보다 따뜻하다. 반환점을 알리는 안내판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열띤 응원을 보내고 행사 진행자들은 분주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마라톤으로 인해 차량 통제를 하고 있어 춘천댐으로 가는 사성 대교와 야경이 아름다운 소양2교 공도도 더 이상 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신매대교로 방향을 튼다. 의암호를 끼고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지와 자연과 문학이 조화를 이루는 춘천 문학공원도 둘러볼 수 있다. 산과 호수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는 멋진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의암댐을 방류하는 보가 있는 신연교로 가는 길은 아직도 마라톤이 한 창이다.

  의암호를 벗어나자, 함성은 갈대의 속삭임에 스며든다. 바람을 가르는 페달링 소리만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백양리에서 대원이 쉼터를 묻자, 대장은 고요하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부지런히 몸이 움직인다. 자전거길 옆으로 길게 뻗은 갈대와 시냇가 은빛 물결에 비친 하늘과 산,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한 폭의 가을 풍경화가 펼쳐진다.

  백양리 갈대 군락지에 멈춰 서서 정지용의 <향수>를 낭송해 본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천연의 입체음향이 되어 내 목소리를 감싼다. 라이딩이 다리로 삶을 밀어 올리는 행위라면 창작과 낭송은 가슴의 언어를 손끝과 입술로 옮기는 일이다. 이 두 행위는 '멈추면 쓰러진다'라는 자전거의 숙명을 공유하며 내 생의 균형을 잡는다.

  아내와 함께하는 가을 라이딩 소풍은 마음을 깊게 물들인다. 호명산 자락 밭에서 들깨 터는 모자母子의 손놀림에서 고소한 향이 흩뿌려져 자전거길까지 퍼지고, 팔랑개비가 있는 가평 대교로 가는 길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어 눈을 호강시킨다. 호명산 자락의 상천역 부근의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닥에 총천연색으로 포근하게 깔린 낙엽이 뒹구는 길은 가을의 심연으로 안내한다. 그 위에서 가을 속으로 우리는 더욱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청평역 부근에 소재한 기타 다리의 상처는 지난 장마에 대한 애잔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아름다운 다리로 재탄생하길 바란다.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파크 골프장을 지나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새터삼거리에서의 늦은 점심 왕갈비탕은 에너지를 공급하고 소소한 휴식과 행복을 제공한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마음의 정원을 지날 때는 단풍잎이 흩날리는 길목에서 꽃 마중을 나온 관광객들로 여기저기서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북한강 변의 잔잔한 윤슬은 오늘도 평화롭다. 북한강이 품은 가을 이야기 무성하게 자란 갈대가 춤추는 마음의 정원과 코스모스 군락이 하늘하늘 춤추는 물의 정원을 지나 한강 팔당대교 아래 삼각주에서 고니가 노는 서식지와 하남 벚꽃길까지 멋진 가을 풍경이 계속 펼쳐진다.

  페달을 힘차게 밟는 힘에 가을의 숨결이 실려 온다. 올림픽대로 변 강동 암사 아리수정수장 부근 한강 변의 3아이유 고개오르막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대원이 어이~ 어이~ 선창하면 대장도 어이~ 어이~ 로 화답한다. 내리막의 시원한 바람이 생각의 기치를 틔운다.

  미루나무가 줄지어서 즐비하고 자전거 연습장이 있는 광진교를 지나 천호대교 아래서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는 가을의 정취를 더 느끼게 한다. 잠실철교 위에서 멀찍이 한강의 붉은 서녘 하늘 노을을 바라볼 수 있어 감사하다. 해가 질 녘은 가을의 발걸음이 빨라짐을 알린다. 한강 다리 조명등이 저마다 개성 있게 빛을 뽐낸다.


  안전하게 라이딩을 마치고 서울 지하철 승차장 안전문에 걸린 시들을 감상하는 것은 가을 소풍의 또 다른 별미로 마침표다. "시는 길을 걷는 이의 발걸음에서 피어난다." 한 줄이 가슴에 박힌다. 플랫폼에서 시를 읽는 순간 길 위에 물든 가을은 그렇게 마음속 깊숙이 번져간다. 천천히 녹아든 가을 속으로 아내와 오래도록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추억의 흔적이 바람결에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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