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걷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까, 양말을 찾아 신고 운동화를 신을까. 나서기 전부터 갈등이다. 운동화를 신으면 분명 걸음이 빨라질 테니 슬리퍼로 하자. 오랜만에 야간 산책을 나선다. 가을아, 너는 안 돼. 너랑 같이 가면 편의점에 들르질 못하잖니. 미안. 기대에 찬 눈으로 바짝 붙어선 개에게 실망을 준다. 고양이는 방문 앞에서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 야밤에 어딜 가냐고 질책이라도 하듯이.
아파트 현관을 나서니 옆집 욕실 창문 틈으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손자가 퇴근한 모양이다. 할머니가 열심히 밤참을 차리고 계시겠지. 매일 내 집 정원 가꾸듯 아파트 화단을 손보시는 이웃집 할머니. 그 덕에 낮엔 그리도 예쁜 얼굴을 자랑하던 꽃들이, 저마다 표정을 바꾸어 눈도 안 마주친다. 나무들도 긴 팔을 늘어뜨린 채 어깨를 웅크리고 있다. 얘들아, 빛은 없어도 바람이 있잖니. 낮보다 더 길게 호흡할 수 있단다. 발밑의 생명들도 말을 걸어 올 거야. 기운을 내거라.
가로등 불빛에 길어진 내 그림자를 밟지 않고 걸으려 애쓰다가 보도블럭들의 생김새에 눈이 간다. 처음엔 가로세로 열을 맞춰 평평하게 잘 깔려있었을 것들이 지금은 서로 다투기라도 한 양 울퉁불퉁 모서리를 삐죽거리며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기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간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겠다. 찻길에 아스팔트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지나다니는 차들이 바퀴로 잘 밟아주고 있다. 분리수거장 근처 ‘공사중’ 푯말이 붙은 울타리 저 안엔 뭐가 있는 걸까. 몇 달째 저러고 있다. 지날 때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길고양이들이 조심해야할 텐데.
내 움직임에 긴장한 길고양이 한 마리가 관목 사이에서 동작을 멈춘 채 나를 빤히 노려본다. 적인가 동지인가 살피는 기세다. 적은 아니지만 동지도 아니란다. 요즘도 ‘캣맘’들은 부지런하니? 이 동네, 쥐는 별로 없지? 듣는 척도 안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밤에는 하늘보다 땅이 더 어둡구나. 고양이가 사라진 깜깜한 관목사이를 살피다가 하늘을 보니 뿌옇다. 별도 없고 달도 없는데 밤이라 할 만큼 어둡지도 않고 초라하게 흐리기만 하다. 도시에선 밤도 제 구실을 못하는 건가.
전철역이 가까운 길로 나서자 사람들이 눈에 띈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돌아가는 사람보다 더 많다.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저 젊은이들은 언제쯤 깨달을까. 그 휴대폰 좀 집어넣고 조심히 걸어라. 넘어질라. 누가 엄마 아니랄까봐 젊은 애들만 보면 잔소리가 나온다. 요즘 가장 지키려고 애쓰는 게 ‘딸에게 잔소리 안 하기’인데...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눈앞에 떠올려본다. 집에 가다 말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하는 십대 아이, 편의점에서 맥주랑 안줏거리라도 산 듯 플라스틱 봉투를 들고 가는 중년 남자, 무거워 보이는 백팩을 어깨에 메고 축 처진 모습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젊은이, 오늘도 수고했어요. 아는 이들도 아닌데 마음이 안됐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놀이터에 들어서서 평형을 유지해본지 오래됐을, 그래서 어쩌면 고장이 났을지도 모르는 시소에 걸터앉는다. 역시 삐걱거린다. 누구 한 사람 와서 반대쪽에 앉아주면 참 좋을 텐데...... 얼핏 그네를 타다가 넘어져 우는 아이의 환영을 본다. 늘 넘어지고 부딪혀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던 아주 오래전의 ‘아이’를 떠올린다. 놀이터에선 우는 것도 놀이란다. 눈물 뚝! 상상 속의, 그리고 기억 속의 아이를 달랜 후, 그네도 한번 타보고 벤치에도 앉아본다. 밤의 놀이터는 혼자 노는 어른 차지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가오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발길을 돌린다.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에 뚫려있는 창들을 올려다본다. 똑같이 생긴 창인데 새어나오는 불빛들은 제각각이다. 빛의 온도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다. 거실만 불 켜진 집. 거실은 어둡고 양쪽 두 방에만 불이 켜진 집. 대충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지 알 것 같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으려니 움직일 땐 몰랐던 고독감이 밀려온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에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 동네에는 밤새도 없네. 죄 없는 새들에게 성을 내며 너무 조용한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향한다. 일부러 먼 길을 택해 눈높이에 있는 것만 보고 걷는다. 그렇게 걸으면 안전하다. 슬리퍼를 끌고 나오길 잘했다. 천천히 걷고 나니 몸은 반신욕이라도 한 듯 노곤하고 마음은 우울하지 않을 만큼 차분하다. 이제는 가라앉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