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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못다 그린 그림책    
글쓴이 : 신은영    26-09-13 14:31    조회 : 25

아직도 못다 그린 그림책

신은영

남편의 회갑 기념으로 딸아이가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준비했다. 56일 동안의 여행은 여러모로 소중한 추억을 남겼는데,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은 그 녀석과의 운명적인 만남 때문이었다. 패러세일링 하러 배 타고 사피섬을 찾았다. 하늘에서 보는 이국의 바다는 멋있었다. 광활한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은 짜릿하고 상쾌했다. 즐거웠던 기분을 뒤로 하고 돌아오던 길에, 배의 앞머리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같이 탔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보니 고래상어가 배 옆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우리 배를 호위하듯이 꼬리지느러미를 살랑거리며 헤엄을 쳤다. 급히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나는 흥분해서 꺅꺅 소리를 질렀다. TV에서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한 청년이 고래상어와 친구가 되어 헤엄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고래상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간 배를 따라 헤엄치던 녀석은 지느러미를 흔들어 잔물결을 남기고 배 밑으로 사라졌다. 가이드는 현지인들도 볼 수 없는 고래상어를 본 게 큰 행운이라며 연신 엄지척하고 'You are so lucky!'를 외쳤다.

여행을 마치고도 우리를 찾아왔던 고래상어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내가 찍어온 동영상을 보며 그 녀석의 모습을 자꾸 되새겼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고래상어가 사는 바다 환경이 너무나 황홀해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군락을 이룬 깊은 바닷속 장면은 장관이었다. 고래상어가 작은 물고기들과 함께 산호초 군락 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환상적인 모습을 몇 번이나 되돌려보기도 했다. 고래상어는 먹이를 먹는 습성과 커다란 덩치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바닷물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습성 탓에 쓰레기까지 삼킬 수 있고, 몸집이 커서 그물에 걸릴 위험도 많았다. 거대한 몸으로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 뒤에 그런 위협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했다.

 

그즈음 도서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프로그램 강의가 기획되어서 신청하였다. 그림책을 만들면서 그 녀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바다 환경오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기에 그 모든 내용을 그림책에 담아 그림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대학에 편입하여 심리학 공부를 하는 중이었고, 역사와 독서 강사 일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 그림책을 만드는 상황이라 충분한 노력을 들여 그림책을 완성해 낼 수 없었다. 빠르게 많은 그림을 그리다 보니 각도와 색감이 비슷해 중복된 느낌의 그림이 보이고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도 않았다. 더더군다나 바다와 바다생물에 대한 사랑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그림책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고래상어에 대한 바다 환경 그림책 바다를 지켜줘!가 출간되었다. 내 책이 출간되는 심정은 품어온 자식을 세상에 내보이는 마음이라고 했던가. 아이들과 환경 주제 독서 수업할 때 내 책을 프로그램에 넣어 다른 그림책과 함께 다뤘다. 내 그림책을 가지고 독서 수업을 하면 할수록 마음속에는 미진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림이 어색할 뿐만 아니라, 글자 없는 그림을 만들려다 최소한의 글을 써서 완성한 그림책은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지문이 모자랐다. 책에 나오지 않은 설명으로 그림을 보여주니,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급기야 너무나 쉽고 빠르게 고래상어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출판사와의 5년 계약이 끝나면 그림과 글을 보강하여 재출간하고픈 열망마저 일었다.

 

부끄럽고 멋쩍은 기분으로 책이 출간된 지 어느새 3년여가 흘렀다. 뜨거운 불길 같던 간절한 바람이 조금씩 사그라들며 이왕 출간된 책을 어쩌겠어?’ 하는 심정으로 아쉬운 마음을 다독일 때쯤에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기획: OCEAN 가장 거대한 기록' 전시를 보게 되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이야기, 나빠져만 가는 바다 환경 이야기, 그 속에서 힘들게 사는 바다생물의 모습들이 선명한 사진에 담겨있었다. 무엇보다도 전시회에서 나는 고래상어와 고래들을 만났다. 비닐봉지를 포함한 주변의 물을 빨아들이는 고래상어의 생생한 모습과 고래의 슬픈 눈망울이 커다란 사진에 화면 가득히 담겨있었다. 봄이 되어 꽃이 만발한 벌판 한가운데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뒹구는 백곰의 모습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가. 잊었던 자각이 되살아나 아프게 나를 찔러댔다.

 

집에 돌아와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그들의 모습을 가슴 속에 되새겼다. 모든 사진은 원본 그대로 밴드와 PC 본체, 대용량 USB에 저장하였다. 자주 꺼내 들여다보고 싶은 사진은 휴대전화 갤러리에 보관하였다. 사진을 수시로 바라보다 보니, 다시 내 안에서 열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 가슴 묵직하게 저며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글로 묵묵히 써내려 가리라. 그러기 위해선 먼저 채워나갈 게 있었다. 그림 실력을 기본부터 따져서 다져야 하고, 좋은 글을 쓰려면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지녀야 하니 준비할 게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내게 당면한 일이 아니라고 애써 눈감아 왔던 일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작업이 절실하다. 그들과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고,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내가 바다를 보며 받았던 위로와 감동을 이제는 되돌려줄 그 어떤 시도를 계속하겠다고, 사진 속 고래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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