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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댁과 돈뭉치    
글쓴이 : 권순예    26-04-06 21:11    조회 : 29

 시어머니 제사만 돌아오면 장롱 뒤로 사라졌던 그 만원권 돈뭉치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1985년 가을의 끝자락, 일찌감치 날을 받아두었던 막내 시누이의 결혼식 날이었다. 강원도 평창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까지 가야 하는 먼 길이라 이른 아침부터 온 집안이 잔칫날 특유의 분주함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건 갑자기 병환으로 몸져누우신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도 속수무책인 듯, 이제는 곡기조차 넘기지 못하시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는 결국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전세 버스에 올라타 시끌벅적하게 떠나던 그 아침, 시아버지께서 형님과 나를 앞에 두고 장롱 속에서 신문에 싼 두툼한 뭉치 두 개를 꺼내셨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빳빳한 만원권 돈뭉치였다. 아버님은 예식장에서 써야 한다며 한 뭉치를 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으시고, 남은 한 뭉치는 돌돌 말아 다시 장롱 뒤로 휙 던져 놓으셨다. 결혼식팀이 떠난 뒤 텅 빈 집에는 아픈 시어머니와 갓 백일도 안 된 내 아들, 그리고 나뿐이었다.

 사단은 다음 날 아침에 터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서자, 형님이 대뜸 물었다.

 “올케, 어제 그 돈뭉치 치웠나?”

 아버님의 돈뭉치를 아기 보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돈뭉치가 감쪽같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형님과 나 말고는 본 사람도 없고, 돈 가져갈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점점 은근히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흘이 지나도 돈은 나오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돈뭉치 생각에 어서 빨리 나타나 주기만을 간절히 빌고 빌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5일 후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다시 시댁으로 내려가 열흘 넘게 초상을 치러야 했다. 황망한 슬픔 속에 돈뭉치까지 행방불명이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누군가 네가 가져갔냐라고 물어봐 준다면 시원하게 아니라고 소리라도 지를 텐데, 아무도 묻지 않으니 속은 더 타들어 갔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남편도 말 한마디가 없으니, 얘기를 꺼내기도 뭐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시퍼런 세종대왕 뭉치가 천장에 둥둥 떠다니다 쿵 떨어져 가슴을 짓누르는 듯해 벌떡 일어나 찬물을 들이키곤 했다. 점점 눈은 퀭해지고, 비쩍 말라갔다.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 49재를 지내기 위해 시댁에 갔다. 내 머릿속은 온전히 돈뭉치로 가득 찼고, 그만큼 기운은 빠져 간신히 버티며 탈상까지 끝냈다. 그러고는 모두 모여 유품 정리를 하는데, ‘올케 돈뭉치 여기 있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괴롭혔던 그 돈뭉치를 찾았다니. 세상에 '돈은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라는 말처럼, 눈도 못 뜨고 사경을 헤매시던 시어머니가 가족들이 떠난 사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가 장롱 깊숙이 돈을 밀어 넣으셨던 모양이다. 허탈한 웃음 뒤로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났다. 목숨 같은 돈뭉치를 지키려던 어머니의 마지막 집념이었을까, 아니면 시집살이 제대로 한 번도 못 시켜보고 떠나시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의 마음고생을 보고 싶으셨던 걸까?

 서슬 퍼런 시어머니가 세종대왕이 되어 환하게 웃고 계시니, 그 압박에서 비로소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이제 돈뭉치 걱정 없이 편히 잘 쉬고 계시죠? 제가 그 돈 욕심 낼 사람이 아니라는 거 어머님은 다 알고 계셨죠? 아이고 어머니, 그래도 그렇지 귀띔이라도 한마디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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