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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요.    
글쓴이 : 김선봉    20-06-07 20:54    조회 : 4,935
   2.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요-2020.06.07.hwp (16.5K) [0] DATE : 2020-06-07 20:54:45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요.”

 

김선봉

마스크를 안 쓰시면 읍사무소에 못 들어갑니다.” 이른 아침부터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읍사무소를 갔더니 마스크를 안 썼다고 못 들어가게 했다. 배가 고파 굶주리는 토끼 같은 아이들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오늘로 사흘째 굶주리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절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라며 둘러대고 싶었다. 물론 난 혼자 산다. 집으로 가서 마스크를 쓰고 다시 찾아갔다. 난 온순한 양이다.

 

입구에 공익요원 세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무선 체온계로 내 이마의 체온을 측정한다. 이름과 전화번호도 적었다. “세상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요.” 라고 말하니 공익요원들이 미소 지었다. 3층으로 가자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5부제에 맞춰갔는데도 대기 시간이 길었다. 간단한 상담 후 선불카드를 받았다. 또 중앙정부에서도 지원금이 나왔다. 가정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원금은 사용처가 제한돼 있다. 주소지 부근 연매출 10억원 이하의 매장이나 점포, 전통시장 등이다. 3개월 이내에 전액 사용해야 된다. 안 그러면 미사용 금액은 회수된다. 조건이 까다롭다. 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제도라 혼란이 불가피하다.

 

재난지원금 카드도 받습니다. 신선한 참외나 수박, 딸기가 있어요. 구경하고 가세요.” 자주 가는 오일장인 용인시장의 과일 노점상이 외친다. 안내판엔 <와이페이, 재난지원금, 돌봄포인트 대환영>이라고 써있다. 시장엔 사람들로 넘쳐난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러진 않았다. 그때는 썰렁했다. 참외 한 봉지를 카드로 구입했다. 그리고 늦은 점심 먹으러 단골집인 순대국 집으로 갔다.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사람들이 엄청 많다며 물어봤다. 그러자 매일같이 이러면 떼부자 되지.”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난 싱겁고 썰렁한 반응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내 관심대상이 됐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다 먹고 계산대로 가니 앞 사람은 재난지원금카드로 계산을 한다. , 이거구나여기에서 조금 감을 잡았다. 조용하던 시장바닥엔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으론 어둠의 그림자가 얼핏얼핏 보였다. 이상한 부조화다. 여기에서 내 감각이 깨어났다. 어색한 그 장면이 내 감각에 포착된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진 파리만 날렸던 걸 알고 있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며 사회, 정치, 경제 등이 뿌리내렸다. 그래서 사회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시련의 시대는 끝났으나 그 시스템은 변함없다. 경제라고 오죽할까?

 

, 맛있고 달콤한 수박이 왔어요. 오셔서 한 번씩 보세요.” 수소문 끝에 동네 선불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마트로 갔다. 마트 안의 남자판매원이 확성기를 통해 손님을 모으고 있었다. 난 일용할 양식이 될 식자재 등을 구입하고 카드로 결제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계산하고 있었다. 물건들을 시장 가방에 담으며 내가 말했다. “세상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요.” 그러자 계산원의 표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표정했다.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상대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경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일일이 반응하다 자극이 계속되면 반응하지 않는다. 귀찮으니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무신경해진다. 무감각해지는 셈이다. 지금도 내 휴대폰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근처 마트의 할인행사를 알리는 문자가 온다. 뒤집어서 보면 그만큼 장사가 안 된다는 뜻도 된다. 장사가 잘되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할인행사를 할 리가 없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갑자기 부자된 느낌이라고 한다. 이제껏 세금을 내기만 했을 뿐 세금을 돌려받으리란 상상을 못했으니까. 이것은 커다란 국가사업이다. 사회 곳곳에 돈을 풀어 그것으로 내수를 살려 국가경제를 회복한다는 큰 그림이다. 돈은 돌고 돈다. 그래서 돈이다. 이것이 돈의 운명이다. 이런 운명을 거부할 때 병이 생긴다. <갈 곳 잃은 부동자금 1100역대최대’..부동산·증시로? 2010.05.31. 연합뉴스> 뉴스처럼 재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재투자가 됐다면 저렇게 돈이 모여 있을 이유가 없다. 돈이 안돈다는 증거다. 이러니 경제가 중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내가 시장에서 본 어둠의 그림자가 이것이다. 돈이 순환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정지하면 경제구조가 왜곡돼 꽁꽁 얼어붙는다. 우리경제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사태 이전의 경제가 이랬다. 여기에 코로나가 추가된 것이다. 구조는 성격상 쉽게 바뀌지 않는다. IMF(국제통화기금)를 졸업했다고 왜곡돼 정착된 경제구조가 바르게 작동하리란 생각이 어리석다. 지금은 돈이 풀린 초기단계라 경색단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이상하게 뿌리내린 경제구조를 서서히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타는 목마름을 위해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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