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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처럼 윤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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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은경을 알게 되는 행운을 잡았다. 아들 친구의 저녁 초대를 받아 처음 그녀를 만났다. 키가 165센티미터 정도일까. 피부가 맑고 눈에 웃음이 가득한 지적인 미인이었다. C컬 단발 머리에 흰색 셔츠와 회색 정장 바지를 입은,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 같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서 회사를 다니다 아이들 유학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왔단다. 보통 이민자들은 집을 렌트해 생활이 안정되면 집을 사는데 유학으로 왔지만 한달 쯤 되어 과감히 2층 단독 주택을 사서 입주했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크림색 빛바랜 엔티크 콘솔과 아기자기한 초록색 화분들이 계단식 받침대 위에 놓여있다. 나선형 2층 계단의 손잡이 틀은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거실 천장에 크리스탈 샹들리에는 동글 동글 구슬알들로 엮어져 조명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로얄 알버튼 장미 꽃 식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 중앙에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긴 양초와 노랑,보라 제비꽃 장식의 센터 피스가 있었다.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스파게티에 고춧가루로 느끼함을 줄인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은경은 두 아들과 우리 가족을 혼다 SUV에 태우고 태양이 내리쬐는 확 트인 고속도로를 생생 달리는 걸 좋아했다. 토론토서 2시간 걸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길에 캐나다는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듯 다양한 문화들이 어우러져 모자이크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과 학교에서 문제 해결 능력의 숙제를 갖고 오기 때문에 정답일까.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도 능숙하게 운전을 잘도 했다.
가을에는 단풍 구경 가자며 오웬사운드로 데리고 갔다. 계곡의 구불구불한 길을 아슬아슬 속력을 내어 달릴 때 긴장이 되어 마치 내가 운전대에 앉은 것처럼 브레이크를 밟듯이 발에 힘을 주었다. 빨강, 노랑 단풍잎이 투명하게 비치는 작은 폭포 앞에서 우리 일행은 엄숙하게 서 있었다. 한 무리의 연어들이 광활한 바다를 누비며 왕성한 시절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영원한 휴식의 보금자리가 있는 폭포수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아가미를 열고 팔닥팔닥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긴 여정에 지쳐 고지를 앞에 두고 눈꺼풀이 꺼지며 죽어가는 연어들 앞에 한 독수리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을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헤엄을 쳐서 휙 날아들고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를 혼신의 힘으로 불꽃을 튕기며 두세마리 연어가 파닥이며 올라간다. 하얀 물보라에서 별처럼 빛났다. 경이로운 자연의 법칙에 슬픔을 뒤로 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 어쩌다 은경이와 연락이 끊어졌다. 나의 바쁜 생활 때문이었다. 낮에는 뷰티살롱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듣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끈기있게 몇 년간 공부한 덕에 칼리지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하얀 셔츠와 브라운 체크 수트를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앉아 있다.
“은혜를 모르는 친구라 원망했지? 미안해” 내가 먼저 말을 했다.
“괜찮아. 너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면서도 칼리지에서 공부를 하게 된 꿈을 이루었쟎아. 네가 부러워”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나 유방암이야. 다음주에 수술이 있어. 다행히 초기라 수술하면 괜찮대” ‘쿵!“ 내가슴이 내려앉아 놀랐지만 오히려 그녀는 침착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한국과 다른 교육 방식에 적응하느라 적잖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한 주제를 갖고 리서치 해야 하는 그룹 프로젝트에서 오는 책임감이 마음을 억눌렀다.
그룹 멤버들과 토론이 있던 날 학교 앞 팀홀튼 (캐나다 유명 커피체인)카페에서 친구와 앉아 있는 은경이를 우연히 만났다. 빨간 니트 모자를 쓴 그녀는 금방 눈에 띄었다. 그녀가 말했다 “안녕? 학교일로 바쁘지? 나 요즘 항암 치료 받고 있어” 강한 약물로 빠진 머리를 상큼하게 커버하고서 약간 피로해 보였지만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그랬구나.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좀 바빴어.” 내 말이 끝나자 은경이는 나를 한참 응시하며 말했다. “정. 너의 이민생활을 글로 써보면 어떨까. 책이면 더 좋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네가 나보다 더 영리하쟎아. 토플 클라스에서 에세이도 잘 적었쟎아. 네가 더 잘 쓸 것 같아.” 은경이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마음에 담겼다. ‘글을 써 봐!’
코리아 타운에 가면 오랫동안 연락 끊겼던 사람들과 가끔 마주친다. 같은 동네 소꿉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서 동아리 만들었다는 친구도 있다. 수퍼마켓에서 일주일 그로서리 쇼핑을 하고 옆 빌딩에 있는 스타벅스를 지나다 창가 테이블에 앉은 은경이를 보았다. 설계도를 펼치고 앞에 앉은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 고개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서 반대쪽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커피를 주문해 들고 나에게 와 건넸다.
“ 나 곧 이사해.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아들 학교 근처에 타운하우스를 샀어. 오래된 집이라 리노베이션 하려고 상담을 받고 있어.”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불길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왔다. 이게 직감이란 걸까? 은경이는 내 얼굴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정. 나 이제 괜찮아. 닥터가 완치 되었다 했어. 그래서 이사하기로 결정했어. 걱정하지 마.
집을 사고 팔고 하는 것 그다지 어려운 일 아니야“
”하지만 넌 휴식이 필요해. 좀 더 있다 이사해도 되쟎아.“
한달 뒤 은경이 연한 핑크빛 페인팅을 칠한 이쁜 집으로 이사한 첫날이었다. 그날 밤늦게 열이 40도까지 올라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종합병원의 응급실에는 대기자가 많아 닥터는 완치된 환자가 왜 왔냐며 은경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튿날 다시 응급실로 가서야 닥터는 임파선에 남아 있던 암세포가 머리에까지 퍼진 것을 발견했다. 3개월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한국에 가고 싶다 했다.
닥터는 비행기 타면 하늘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렸지만 무사히 일산 암 병원에 도착했다. 두 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4개월 뒤에 하늘나라로 갔다. 핑크 하우스는 유방암의 아픔을 같이 나눈 이들에게 남기고 .
‘아! 왜 말리지 못했을까!’
넓고 넓은 대양을 활보하다 파도의 골짜기를 넘어넘어 마지막 생을 마감하러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 연어를 보며 자연의 미스터리라고, 삼라만상의 질서에 겸손해진다고 말하던 은경이 자신도 연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