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너를 알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전혀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알고 보니 내가 여자였다. 그리고 ‘엄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생기고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이었는데 어느 날 내 몸에 네가 들어섰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날 나는 너무 두려워 대성통곡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사회생활이 끝나는 건 아닐까. 나는 아직도 덜떨어진, 이름만 ‘어른’인 사람인데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 인생, 이제 어떡하지?? 처음은 그랬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혼란스러운 아홉 달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너는 보란 듯이 자랐고 연약한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너는 내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너를 만나면서 나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너를 처음 안던 날, 나는 내 몸 속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강력한 효력을 가진 호르몬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호르몬은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바라만 봐도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똬리를 틀면서 가끔은 행복하게, 가끔은 슬프게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가끔은 밖에서 혼자 지나가는 작은 아이만 보아도, 봄에 피어나는 작은 새싹도, 심지어 동네 길고양이만 보아도 ‘어머, 이를 어째!’ 가엾은 마음이 들고 그 여린 생명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와 닿아 내손으로 돌보고만 싶어졌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너를 사랑하다보니 온 생명이, 온 우주가 사랑스러워졌다.
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모든 동물의 새끼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다는 인간의 새끼, 어린 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사랑하는 법을 익혀갔다. 나를 위한 것, 내 한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나에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를 버리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시작한 인간처럼 또는 처음 글을 배우는 심정으로 사랑을 습득해갔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헤매었던가. 희생과 인내는 물론, 자식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은 또 얼마나 많은지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야했으며 그러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로워져야 했다. 누구나 될 수 있는 ‘엄마’였지만 아무나 잘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애초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억지로 겨우겨우 자격증을 취득한 것처럼 ‘엄마’노릇을 해가며 좌절을 거듭하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불안한 엄마를 두고도 너는 잘만 커갔다. 미숙한 엄마의 사랑 속에서도 너는 쑥쑥 자랐고 너의 성장과 더불어 나도 나이를 먹고 성숙해져갔다.
네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내가 겨우 ‘엄마’가 되었다는 증거이리라. 돌이켜 보면 너무도 아슬아슬했던 나의 젊은 ‘엄마’ 시절. 네가 웃을 때, 네가 건강할 때, 네가 똑똑할 때만 너를 사랑했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사랑인 줄 알고 사랑했는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던 나의 얄팍한 모성이 한심하다. 다 자란 너를 보면서 늘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건 좀 더 잘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자꾸 찾아들어서다. 그래,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실수도 있었던 거겠지. 완벽하지 않은 엄마를 둔 자식이면서도 너는 무사히 성인이 되었으니, 나는 참 운도 좋은 사람이다. 이제는 네가 잘났든 못났든, 네가 웃든 울든 나는 늘 너를 사랑하고 너의 엄마로 살 것이다. 네가 주는 즐거움에만 반응하지 않고 너의 슬픔과 아픔까지도 인정하고 받아주면서 좀 더 성숙한 엄마가 되려고 한다. 이미 어른이 되어 어쩌면 더 이상 엄마가 필요 없는 너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겨우 ‘엄마’가 어떤 건지 깨달은 나를 좀 더 지켜봐 주겠니? 그래서 언젠가 너도 엄마가 되는 날, 우리 같은 ‘엄마’끼리 자식얘기 도란도란 나누자꾸나.
네가 있어 참 좋다는 이야기, 너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흐른다는 그 말이 하고 싶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