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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의 외출    
글쓴이 : 박승해    26-11-04 00:25    조회 : 184

달팽이의 외출


 

툭! 뭔가 떨어졌다. 자갈돌인가?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자세히 보니 작은 달팽이다. 초록의 상추밭에서 편안한 오수(午睡)중이었을 텐데 놀랐나 보다.

온몸으로 ‘여기가 어디지?’하고 묻고 있다. 아마 자기도 황당하겠지.
녀석은 머리를 꽁꽁 숨기고 단단한 껍질 안에 웅크리고 있다. 슬쩍 건드려봐도 미동도 안하는게 여간해선 밖으로 나오지 않을 기세다. 두려운 마음일까? 구석에 웅크린 녀석의 이마에 상추를 덮어놓고 기다렸다. 두려움이 풀리면 나오지 않을까.


남편의 지방 발령은 서울이라는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 편안함에 취해있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처럼 허둥거렸다. 풀밭의 달팽이처럼 안전하고 평이했던 생활 리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초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포물선은 자꾸 미끌거렸다.

급하게 이사한 낯선 도시에서 나는 그들에게 생소한 타지인이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사옥은 막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였다. 그래서인지 전주 근교에서 이사 온 외지인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같은 말을 쓰는 외지인이고 나는 서울말을 쓰는 외지인이란 거였다.

그들은 나를 ‘서울댁’이라고 불렀다. 작고 조근조근한 서울 말씨는 그들에게는 미끌거리는 돌멩이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속엣말을 참지 못하는 너무나 솔직한(?) 이웃에게 가끔은 지적 아닌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정 없이 해요?”
“말하는 게 아니라 책 읽는 거 같아”

“서울 사람은 깍쟁이라던데”

사방에서 날아오는 특유의 사투리와 숨기지 못한 호기심은 나를 더 안으로 꽁꽁 들어가게 했다. 툭툭 던지는 투박한 말투가 싫었던 나는 거의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 아이를 ‘픽업’하는 2번의 외출이 전부였다. 나는 살그머니 껍데기를 기어 나오는 달팽이처럼 주변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다녔다.

 

창문을 열면 앞뒤가 다 녹색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 바람 소리, 어느 집에선가 키우는 ‘반려 가축’이 우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개구리 울음이 잠잠해지자 맹꽁이가 짝을 찾는 소리, 숫매미의 구애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심심치 않게 나는 부부싸움 소리, 아이가 우는 소리는 차라리 음악 소리였다. 나는 빌딩 많고, 사람 많고, 자동차 경적이 시끄러운, 할 일 많던 ‘서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낯선 지방,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 ‘평화동’에 앉아 달팽이처럼 갑옷을 입고 나 혼자만의 집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모르지만 그들이 달라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소 닭 보듯이’ 하던 우리였다. 수군거리던 그들이 마치 회의라도 한 것처럼 인사를 하고, 반찬을 나누어 주고,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물론 나는 완곡히 사양했다. 그들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서울 말씨 얄밉다고 수근거릴 땐 언제고’

‘방심하지 말자. 가까이 하면 어느 순간에 한 방 펀치를 날릴 거야.’ 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관심을 경계했다. 이런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김치를 새로 담가서’, ‘봄 나물을 캐서’, ‘호박전을 붙였다고’ 초인종을 눌러댔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그들에게 결국은 현관문을 열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 어리석은 장벽이 얼마나 어이없었는지를.

 

나는 껍질에 싸여있었다. 그들의 투박한 말투 안에 숨겨져 있는 ‘소박한 인심’을 알지 못했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완주, 남원, 임실, 이리(지금은 익산)등에서 전주로 입성(?)한 그들의 자부심은 상당했다. 학구열도 대단해서 아이들의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 사투리에 녹아있는 입담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사실 전주 토박이는 사투리가 별로 심하지 않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나의 얼어붙은 마음도 녹기 시작했다. ‘타향살이’라는 스스로 만든 울타리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남원 사투리 완주 사투리도 적당이 받아치면서 서서히 ‘외출하는 전주댁’이 되어갔다. 동네 친구들과 ‘몸빼 바지’입고 ‘빨간 다라이’ 옆구리에 끼고 목에는 수건 걸고 한 손에는 호미 들고 있으면 영낙없는 촌부의 모습이다, 가을이면 감 따러 뒷산도 오르며 나는 전주의 진한 맛에 점점 빠져들었다. 서울댁은 달팽이집을 완전히 탈출해 행복한 전주댁이 되고 있었다.


“언니 김치가 너무 맛이 없어, 생고추를 갈아서 만들어야지”
“야. 우린 그렇게 안 해. 너 전주댁이 다 됐네?”

“전주에는 말야 전주시장이 있는데 천변을 끼고 골목 안으로 좀 들어가면 진짜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이 있어. 에이! 서울 거는 맛이 없어”

어느날 서울에 놀러와 밥을 먹다가 결국은 한마디 하고 말았다.

 

삶의 여정은 변화무쌍하다. 전주에서의 생활은 남편의 서울 발령으로 끝이났다. ‘서울 새댁’에서 ‘전주댁’으로 이제는 ‘일산 아줌마’로 살고 있다. 30대의 전주댁 시절 따뜻했던 이야기, 넘치는 정을 주체 못하던 순박한 사람들, 온 산을 지천으로 물들인 노란 유채꽃, 여인의 모시치마처럼 흐드러진 덕진호의 연꽃은 언제든 열어보는 사진첩이다.

젊은시절 낯선 곳에서 껍데기 안으로 숨던 나는 이제는 어디서나 잘 적응하는 ‘껍데기를 벗어난 달팽이’가 되어있다.

 

싱크대 한구석에 슬쩍 덮어둔 상추이파리가 들썩인다. 단단한 껍데기를 등에 업은 달팽이가 더듬이를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다. 기다림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전주댁의 사투리가 입가에 맴돈다.
“고놈 허벌나게 예쁘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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