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아산 공세리 성당 여행    
글쓴이 : 심희옥    25-12-10 20:25    조회 : 34
   아산 공세리 성당 여행 (2월 최종)4.hwp (151.5K) [0] DATE : 2025-12-10 20:25:35

아산 공세리 성당 여행

 

심희옥

 

온양 민속박물관과 현충사도 들를 계획이었는데 휴관이라서 들를 수 없었다. 사실 이 두 곳은 여기서 학교 다니고 자라면서 많이 가본 유원지이다. 나는 그보다는 그동안 내가 타향살이로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명승지가 많다는 걸 알았다. 피나클랜드니 환경 과학관 같은 곳 말이다. 그래서 온양은 지역 명소가 꽤 많은 편이다. 봉곡사, 아산 외암마을, 맹씨행단, 아산스파비스며, 신정호수, 도고면의 옹기박물관과 레일바이크, 세계 꽃 식물원이 그곳이다. 아마 통틀어 12경이라 하니, 꽤 많은 축에 속한다. 아산에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곳이 있으니, 바로 공세리 성당이다. 아산 관내에 다른 여행지도 가보았지만, 오랜 염원이기도 한 이곳이 내 삶의 땅인 아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명소이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도 공세리 성당은 정말 유명하다. 아산시 인주면에 위치한 어여쁜 성당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충청도 내에선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외관이 빼어나다. 성당의 해질녘 아름다움은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아치와 외벽을 지탱하는 반아치의 석조 구조물과 하늘을 향한 뾰족한 첨탑 등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특히, 성당의 출입구 정면은 건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서 전주의 전동성당이나 서울의 명동성당을 떠올릴 만큼 미감을 준다. 만평 내외 부지에 마련된 성지여서 박물관 옆에는 사제관과 피정의 집, 성배소, 성당 등이 있었다.

성당이 속한 공세리는 조세를 보관했던 공세창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옛날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원래 바다로 볼록하게 나온 곶이었다. 그런 모습을 그리며 성당을 바라보니 감회가 깊었다. 그 후, 이곳은 당진까지 간척사업을 하여 지금은 아산만호가 되었다. 더불어 삽교천 방조제가 있는 곳과 밀접하다.

고대에는 삼국 통일 과정에서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구성한 나당연합군의 백제와의 전투 현장이고 몽골 침략기에 대항하던 고려 무장 세력인 삼별초 항쟁의 격전지였다. 또한, 청일전쟁과 동학농민군의 활동지였기도 했다. 심지어, 천주교 박해로 인해 여러 신도가 죽임을 당한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성당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콧날이 울렁거렸다. 성당 앞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묵념해 보았다. 그리고 뒤편의 십자가의 길을 조용히 걸어보았다.

나는 조금 이 성당에서 요즘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늘 아프게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 삶을 사유해 보았다. 그저 내 삶을 살고 또 살아가면서 나아가는 것이 간절한 삶의 여로이겠지.

여행을 통해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면서도 다니는 내내 한쪽에선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그를 떠올렸다. 그 친화력은 견고함과 굳건한 약속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참 멀리까지 왔고 앞으로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여태까지 간직하고 있는 노스텔지어 같은 정서는 아쉽게도 언젠가는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성당을 떠나야만 했다.

 

-작가의 변

재작년 즈음 아산 시티투어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간 곳을 다 쓰기보다는 재합평을 계기로 숙고한 끝에 그중 가장 써보고 싶은 공세리 성당에 대해 썼습니다.

탕정의 지중해 마을은 류승하 선생님의 조언처럼 명성이 있었던 탕정의 포도밭이 하루아침에 거대한 공장으로 바뀌고, 경운기 한 대가 겨우 지나던 농로는 왕복 6차선 산업도로로 바뀌었습니다. 마을공동체 붕괴와 함께 삶터를 잃은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투기 자본도 시골마을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어요. 자본가들의 유혹에 땅을 넘긴 주민들은 일찌감치 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몇몇 농민들은 넉넉한 보상금으로 팔자를 고쳤다는 소문도 들렸어요. 어쨌든, 산업화로 도시개발이 이뤄진 가운데, 66가구는 절망을 딛고 탕정 명암 마을을 지켜내려 했습니다.

두 번째 이 글의 재합평을 통해 또 지적 받았는데요, 마지막 paragraph를 빼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쓴 작가는(본인) 여행을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제가 어디를 다니던 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늘 뮤즈로 자리잡은 그 사람덕분에 여행의 동기화나 지속성이 있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심희옥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0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