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안점준
저녁 식사 후 남편과 함께 있는데, 공무원 합격한 딸이 말했다. 오늘 너무 귀여운 아기 토끼를 마트에서 보았는데 꼭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토끼가 자기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 판매하는 아주머니에게 내일 꼭 데려간다고 아무에게도 팔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보건소 근처 원룸 얻으면 자기가 데리고 가서 같이 살겠다고 했다. 평소 우리에게 부탁을 잘 안 하는 딸이 말해서 남편과 나는 승낙 했다. 딸은 몹시 신이 났다. 어느 신비한 우주에서 아니 별에서 왔는지 너무 작고 예쁜 아기 토끼다. 이름은 남편이 지어주었다. 성격이 급한 아빠와 딸이 자주 부르면서, 온유한 성품을 기대하면서, 이름을 온유라고 지었다. 딸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출근 날이 발표되어서 딸과 함께 방을 구하러 다녔다. 여러 곳을 보고 맘에 드는 방이 있어, 집주인한테 연락해서 부동산에서 계약하는데, 특약란이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황당했지만, 나는 딸을 설득했다. 내가 잘 키워주겠다고 금요일마다 집에 와서 같이 보내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딸은 알겠다고 수긍하고 방을 계약했다.
딸이 보건소 근처로 이사하고 처음 집에 온 날 책 선물을 받았다. 제목은 “토끼” 책 두 권이다. 한 권은 엄마, 한 권은 딸 꺼 기가 막혔다. 모르고 키우는 것보다 알고 키우는 것이 아기 토끼에게 실수를 안 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토끼를 키운 적이 없다. 딸 덕분에 토끼 엄마가 된 것이다. 남편과 둘 이 있던 집에 작은 요정이 온 것 같았다. 모두 출근하고 텅 빈 집에 어린 온유 케이지에 가두어 두기 마음 아파 문을 열어 놓았다. 온유는 한 참 이갈이를 하더니 가죽 소파, 문, 충전기 선을 갉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똥을 한 알, 두 알 카펫 위에 흘리더니, 몇 주 지나서 놀다 가도 패드를 깔아 놓은 케이지 안에서 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내가 케이지를 청소하고 새 패드를 깔아주고 문을 열어 놓아야 하는데 깜박하고 잠근 상태로 출근했다. 세상에 온유가 들어가지 못하니까 잠긴 문 앞에다 오줌과 똥을 누었다. 얼마나 미안했는지.... 나는 당연한 행동인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두가 신기하다고 했다. 토끼가? 거짓말이 아니냐고 했다.
퇴근해서 온유야 하고 부르면 베란다에서 반갑게 뛰어와 카펫 위에서 빙키를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름을 부르면 달려온다. 강아지처럼 다리에 매달리면서 간식을 요구한다. 출근 준비하고 나오면 카펫 위에 예쁘게 앉아 있다. 너무 너무 예쁜 인형이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출근한다. 온유 발톱을 깍아 주어야 하는데 잘 못 깍을 것 같아 겁이 나서 동물 병원에 갔다. 성별을 물으니 의사 선생님께서 암컷이라고 했다. 내 배 아프지 않고 얻은 작은딸이다.
빙키(Binky): [Noun] (rabbit behavior) A high hop that a rabbit may perform when happy 토끼가 공중에 서 회전하며 뛰는 기쁨 또는 흥분의 표현
온유는 중성화 수술을 해주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지방에는 토끼 전문 병원이 없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 전문병원이 있어 딸이 출장 가는 일정에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병원 예약했고, 일정에 맞춰 1박 2일 입원해야 했다. 수술하는 날, 나는 아무일도 할 수 없었다. 수술 시간이 지났을 즈음, 온유가 마취에서 깨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다. 불안하게 기다릴 수 없어서 전화를 했다. 간호사가 온유랑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마산에 온유 엄마”라고 했다. 수술이 잘되었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날은 내가 공식적으로 온유 엄마가 된 날이다.
작은 컵을 3~4개 쌓아 놓고 컵 빼기 하자고 하면 입으로 하나 하나 빼는 기술을 익혔다. 컵에 좋아하는 땅콩을 넣어 쌓아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온유 천재네 아주 훌륭해 하면서 박수 쳐 주면 무척 좋아했다. 온유가 기발한 행동을 할 때 “아이고 우리 온유 언니 닮아서 멘사 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영상 찍어서 지인들한테 보여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 신청하겠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온유가 온 후 택배가 수시로 왔다. 온유 사료, 건초, 간식, 바나나 집, 여름엔 덥다고 돌 침대, 쿨 매트까지 배달 시켰다. 딸은 동생 온유에게 아끼지 않고 주었다.
온유는 집안 전체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나는 지인들에게 온유 집에서 산다고 한다. 온유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내는 것, 나의 일상이 되었다. 온유는 언니를 제일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온유는 언니 자는 옆에서 함께 자고 있다. 나는 여행 갈 때마다 그곳에 있는 씀바귀, 칡넝쿨, 민들레 잎을 뜯어서 온다. 온유가 좋아하는 풀이다. 나는 온유가 딸기. 수박, 망고, 사과, 배 먹는 모습을 수시로 동영상으로 찍어서 친구들한테 보내주면 “온유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한다. 더치 토끼인 우리 온유는 너무 예쁘고 귀여운데 단점이 털이 많이 빠지는 것이다. 외출할 때면 테이프 롤러로 몇 번이나 밀고 나간다.
더치(Dutch) 토끼: 토끼의 한 품종. 2~2.5kg 정도의 중소형 토끼로 영리하고 순한 성품임.
우리 가정에 행복을 주며 함께한 9살 된, 24년 2월 7일 온유가 평상시와 달랐다. 안 먹기 시작하더니 움직임도 작았다. 우리는 한 달 전 구정 여행하려고 산청 가족 호텔을 예약했다. 온유가 가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여행 갔다 왔는데 우리 없을 때 온유가 혼자 하늘나라 가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을 취소하려고 연락했더니 당일은 취소가 안 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지인을 찾아 대신 가도록 했다. 딸과 의논해서 오랫동안 아프면 온유가 너무 힘들 것 같아, 안락사도 의논하고 만약 빨리 갈지도 모르니 반려 동물 화장터를 알아보았다.
다음날 온유는 숨을 더 가쁘게 쉬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설 음식하고 힘들어서 큰 방 침대에 잠시 누워서 쉬고 있었다. 밖에서 “캬악”하는 소리가 나서 얼른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서 딸과 남편이 온유를 쓰다듬으면서 울고 있었다.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온유야 엄마 왔어”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바로 눈을 감았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엄마 온유는 효녀다 그치? 엄마가 안 보이니까 인사하고 가려고 엄마를 부른 것이다”라고 했다. 온유는 기분 좋을 때만 작은 소리를 냈다. 그렇게 큰 소리는 내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4년 2월 9일 9살 온유는 우리가 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갔다. 모두가 온유의 죽음을 인정하며 한참을 울면서 기도 했다. 오랫동안 아픈 모습 안 보이고, 예쁘게 간 것이 정말 감사했다. 새 수건을 꺼내서 온유를 가슴에 안고 가서, 화장해 수목장하고 왔다. 연휴 기간에 잘 정리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주고 간, 우리 온유는 아름다운 이별을 한 영원히 예쁜 공주다.
나는 가족에게 연명 치료 하지 말라고 한다. 오랫동안 아니 20년 넘게 병원에서 가족을 못 알아보고 요양 병원에서 돌아가신 가정을 보며 슬펐다. 내 친구 또한 넘어질 때 머리를 다쳐 의식이 없는 상태로 8년이 되어간다. 친구 딸의 올 해 기도 제목은 엄마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내 생명이 언제까지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오는 새로운 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고,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도 우리 예쁜 공주 온유 처럼, 아름다운 이별할 시간 2박 3일 소망 하며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