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떠나보자
김옥희
세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다는 친정 조카의 연락을 받았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봄이 오기 전 추운 겨울은 취업생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겐 참으로 힘든 시간이다. 아직도 나는 취업 시즌이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과 한기를 느끼곤 한다.
3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아들이 남편과 나를 앉혀놓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고민했었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해서 진로를 바꾸겠단다. ‘지 누나가 저러더니 집안 내력인가?’ 싶어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내심 무난히 재취업에 성공한 딸을 떠올리며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남편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그럼 집에서 잠은 재워 주겠지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하며 일어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취업 한파의 무지막지한 한기가 막 시작되는 시기여서 다들 모임에 가면 ‘내 자식 취업했노라.’ 말하기도 조심스러웠던 7, 8년 전 이야기다.
멀쩡한 직장을 뛰쳐나온 아들은 조교 생활을 시작으로 대학원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학교라는 울타리의 신선한 분위기에 어울려 생기가 돌았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도 지칠 줄 모르던 녀석이 한 학기 마칠 때쯤 지치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밥을 먹으며 한숨이 길어지고 다크 서클이 눈 밑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힘드냐?”고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고 아들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조교 생활을 접고 1학년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한 번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박사 과정 선배가 취업도 어려운데 그 직장을 왜 관두었냐?”고 물어보더라고 하였다. 그 말을 하는 아들의 표정이 가슴을 비수로 찌르듯이 깊은 회한에 차 있었다.
그즈음 ‘불안’이란 감정이 끓어 오르며 그것은 나를 몹시 거슬리게 하고 요동치게 했다. 아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여 젊은 시절을 몽땅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후회와 자책에 빠져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 그것은 일상의 평온을 깨뜨리고 수시로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게 하여 아들보다 깊은 다크 써클이 위장까지 내려왔다. 또한, 인간의 七情인 희. 노. 애. 락. 애. 오. 욕 중 밀어 넣을 곳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 어떤 형체도 없는 것이었다. 가족 누구도 아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아들 역시 ‘힘들다’고 내뱉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서로 잠깐씩 같이 있는 시간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른 아침 수시로 절에 가서 작두 타듯 날뛰는 그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법당에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있곤 했다. 약간의 한기와 고요한 무게가 도는 절간은 나를 가라앉혀 줬고 다독여 주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의 미소는 매일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와 제대로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그것으로도 가라앉히지 못하는 날에는 절 가까이에 있는 서점으로 들어가곤 했다. 오전의 서점은 늘 단정하고 차분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신간, 베스트 셀러, 요리 서적, 부동산 서적 판매대 등 순례하듯 늘 같은 코너들을 느리게 걸어 다니며 책을 열어보며 향기를 맡았다. 그러다 어느 날 여행 지침 코너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럽, 그리스, 러시아, 제주도 여행안내 등등 보기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책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중 우연히 보게 된 여행 작가 태원준의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표지인지 뒤적이던 책갈피 속이었는지 사진 한 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훅’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직원이 달려와 살펴보고 주저하다 가는 바람에 겨우 진정하고 그 책을 사서 서둘러 서점을 나왔다. 그 사진은 덩치 큰 청년과 나처럼 브로콜리 파마머리를 한 왜소한 중년의 여자가 배낭을 하나씩 메고 나란히 찍은 뒷모습이었는데 먼 여행을 떠나는 듯 큰 배낭이 등을 다 덮고 있었다. ‘아~~ 나도 떠나고 싶다.’ 하는 절절한 바람이 말릴 틈도 없이 갑자기 치고 올라온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잠시 그 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의 환갑 기념으로 같이 배낭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그 추억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300일간 세계를 누비다!’라는 부제를 보고 오랜만에 웃음이 났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문자로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배낭을 멘 엄마와 아들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학교 도서관에 있던 아들이 조금 뒤 답을 보내 왔다.
”와~ 멋지네요. 엄마. 나 합격하면 우리도 떠나요.~~~^^”
아들의 답장이 그럴 수 없이 경쾌하게 다가왔다.
“그래. 우리 떠나보자!”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야?”
“흠~ 캐나다 어학연수 갔을 때 친구들이랑 산꼭대기부터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스키 타고 내려왔던 그 산이요.”
“엄마는요?”
“아빠랑 싱가포르 여행 갔을 때 빈탄섬에 들렀는데 이 세상 낙원이 여기구나 싶더라고. ㅎㅎ.”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 후로 아들과 나는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서로의 마음에 일고 있는 ‘불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건성으로 들었던 아들의 새로운 전공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서점에 들러 책을 찾아 읽어보고 그중 괜찮은 것은 아들에게 권하기도 하였다. 필요 없는 책이라 타박을 줄 것 같았는데 “아! 이런 책도 있네요.” 하고 씩 웃으며 받아 보는 아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올 겨울도 여지없이 한기가 옷 속으로 스며든다.
새봄을 기다리는 모두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