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記
김옥희
긴 은퇴시간을 보내고 다시 유사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근로조건과 임금협상도 무난하게 합의를 보고 의욕적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처음 2년간은 신입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무렵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었지만, 아침이면 자동 기립하여 출근했다. 남편도 안쓰러운지 “내 식사는 걱정하지 말고…”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영혼 없는 그의 격려마저 위로가 되었다.
3년 차부터는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출근하며 대기업 임원급 근무 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5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호봉이나 호칭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난 ‘할머니’ 또는 ‘엄마’로 불린다.
손녀를 돌보며 육아 방법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잠재우는 방법이었다. 태아 때의 환경과 유사한 지속적인 소리 즉 백색소음을 틀어 주면 애가 혼자 뒹굴다가 잠이 들었다. 옆에서 항상 같이 누워 토닥거리며 재우던 나로서는 생소했다. 애가 칭얼대면 포대기 하나로 한 몸이 되어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그만이었는데 다리가 휜다고 딸은 내켜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짐볼의 탄력을 이용해 같이 붕붕 대며 달래거나 재웠다. 저러다 안고 있는 팔이 남아나겠나 싶었다. 또한, 대소변 가릴 때 혼을 내면서 애 둘의 기저귀를 졸업시켰는데 딸은 아이가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의 지속적인 사랑과 꾸준한 격려로 서서히 조심스럽게 마무리 지었다. 한 번은 손녀가 오줌을 가릴 나이에 낮잠을 자다 이불에 쉬를 해버렸다. 퇴근해 온 딸에게 이야기하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앞집에 소금을 받으러 보내자 했더니 딸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마, 요즘 그런 건 아동 학대예요!” 한다. ‘아동 가정 교육’을 ‘아동 학대’라니! 내심 괘씸하고 놀랐지만,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육아라는 긴 항해에서 배의 선장은 딸이니까. 하지만 초보 엄마의 항해 방향이 교육열로 가끔 흔들리고 요동치면 어김없이 제재의 신호를 보낸다. 손녀의 안정된 정서 담당은 할머니이니까.
하원 시간 유치원을 나오던 손녀가 멀리서 나를 보고도 못 본 척하다가 배시시 웃으며 내 품에 안기는 것도, 아이들을 기다리는 내 또래 동료들과의 수다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젊은 엄마들처럼 원아 맘 단톡방이 없어 아쉽지만, 가끔 점심시간에 만나는 동료들과의 대화로도 많은 위로와 정보를 얻는다.
재취업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 듯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즐겁지만, 친구들과의 장거리 여행이나 남편의 꿈인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미루고만 있어 마음에 걸리는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 또한 모든 직장인의 애환이 아니겠는지. 그렇지만 초기 2년간의 출퇴근은 힘들었다. 익숙하지 못한 출근 시간대에 맞추느라 그리고 젊은이들과 버스나 지하철에 섞여 자리를 차지해 있는 것도 그랬고 퇴근 때 지쳐있는 그들을 보는 것도 그랬다. 나도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에 익숙해질 때쯤 요일마다 변해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그것도 나의 모습이겠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은 버스 안이나 지하철 안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일주일을 지낼 에너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인지 도 닦는 분위기다. 창밖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그들에겐 아무 표정이 없다. 그냥 회색빛이다. 화요일 수요일 지나며 조금씩 올라오는 그들의 어깨는 금요일이면 절정을 이룬다. 출근하는 표정들도 퇴근하는 분위기도 다들 들떠있어 차 안이 그냥 환하다. 그들이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바닥의 울림도 스쳐 지나가는 무리의 웃음소리도 리듬이 있다. 전체가 무지갯빛이라 할까? 그 마음에 나의 마음도 실은 듯 가볍다.
주말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그냥 편안하다. 남편과 가끔의 외식도 좋고 게으름을 피우며 드러누워 책을 봐도 친구들을 만나도 마음이 가볍고 즐겁다.
주말에 가끔 만나는 친구들의 공통 화제는 거의 손주 이야기다. 몇몇은 나처럼 재취업을 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중 몇 년 전 주민센터에서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해 여자아이를 돌보는 친구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유치원을 다니던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오후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용돈으로 쓸 만큼의 급여가 나와 시작했는데 이제 그 부모도 그렇고 친구도 서로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란다. 그 친구가 얼마 전 모임에서 “그 애를 돌보다 이 아이가 커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많은 시간 같이 있었던 나를 어떻게 떠올릴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한 아이의 기억에 책임감이 생기는 거야. 좋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임감’이라 말하는 친구의 표정이 평소보다 달떠 보이는 것 같아 나 역시 가슴이 뭉글해졌다.
오늘 퇴근 시간 차창 밖으로 유독 아름다운 빛을 띠는 노을을 보며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품에 안겨 “할머니 냄새 좋아.”하는 손녀가 훗날 할머니와 보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릴 때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책임감’인지 재취업의 ‘여유’인지 어렴풋이 그 모습이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