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을 정리하며
김옥희
오후, 버스 안은 한산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하며 밖을 내다보니 지나가는 봉고차 옆면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유품 정리해 드립니다.’ 하는 큰 고딕체가 쓰여 있고 그 밑으로 여러 유형의 유품 목록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어느 유품 정리사의 기록’이라는 신문 연재물을 읽고 있던 터라 그 광고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길이 갔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도착지까지 가며 그 광고를 다시 떠올려봤다. ‘유품 정리사’ 또는 ‘특수 청소부’라 불리는 그들이 직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며 고인을 그리워하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최근에는 고독사로 홀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유품 정리를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서도 예전에 비해 많은 의뢰가 들어 오고 있다고 한다.
시댁, 친정 부모님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는 당연히 우리 자식들 몫이었다.
쓰시던 가구 가전제품들은 사람들을 불러서 들어내면 되지만 가장 정리하기 힘든 것이 사진들이었다. 부모님이 친구분들이나 친척분들이랑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버리기도 어렵고 디지털로 전환하여 일부는 지니고 있어도 그 외 많은 사진을 지니고 있기는 어려웠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태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 태워 버렸지만 요즘 아파트에서는 그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시아버님 유품은 부산에 있는 형제들이랑 어머님이 거의 정리를 하셨기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며 옷장을 열어보고는 우린 깜짝 놀랐다. 가끔 사드린 옷들이 옷장의 반 넘게 차지하며 그대로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자주 입으신 듯한 옷들이 후줄근하게 걸려 있었다. 자식들이 사준 옷들이 아까워서 그러셨을 것이다. 아끼던 그 옷은 체구가 비슷한 시이모님에게 돌아가고 우리는 많이 씁쓸했다.
친정아버지 유품은 큰오빠와 엄마가 정리하시기로 해서 우린 잠시 부모님 집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중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여러 개의 중절모가 가지런히 진열된 장식장을 한참 동안 본 기억이 난다. 모자 쓰기를 즐기시던 분이라 외출 때마다 이것저것 거울 앞에서 써보시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 친정엄마 돌아가시고 엄마 계시던 집에 들렀을 때, 준비한 듯 정리해 놓으신 엄마의 살림살이를 보고 형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울먹였다. 부엌살림부터 장롱의 옷 정리까지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하셨던 분이지만 가실 날을 준비하며 하나씩 비워내신 듯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렇게 정리하실 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것도 모르고 가끔 엄마가 주신 당신 아끼던 장신구를 받고 활짝 웃던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나처럼 기쁘기만 하셨을까?
지금 내 침대 옆엔 아담한 자개장이 하나 놓여 있다. 엄마가 마른 수건으로 자주 닦으며 귀중품을 넣어 두던 것인데 형제들에게 내가 꼭 가져가고 싶다고 해서 들고 온 것이다. 안방에 같이 있던 자개농보다 곱게 장식된 자개장을 더 아끼셨고 그것을 처음 장만하였을 때 무척이나 기뻐하던 엄마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귀중품을 그곳에 넣어두고 엄마처럼 마른 수건으로 광이 나게 닦으며 답답한 일이 있으면 앞뒤 없이 엄마에게 하소연하듯이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들까지 결혼시키고 이사를 결심하면서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며 숙제처럼 각인 되었던 비우기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집 크기를 줄이고 살림살이도 거의 반 정도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야 홀가분해질 것 같았다. 집 구석구석에 넣어둔 물건들이 내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만 남기고 버리기로 작정했지만 남편을 설득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본인이 소장한 책들, 도자기, 가끔 지인들 전시회에 들러 사둔 걸지 않는 서예 액자, 그림 액자까지 하나하나 추억을 열거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남편에게 “그 추억들을 다 펼쳐놓고 살 수 없다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같이 즐기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그리고 작은 오피스텔을 구해 남편만의 공간을 만들어 본인이 아끼는 애장품들은 그곳으로 옮겨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작업실로 만들자고 했다. 거의 한 달 정도 걸려 둘은 추억들과 이별하고 또 추억에 젖어가며 집안 정리를 하였다. 추억들을 정리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버려지는 물건들을 모아둔 작은 방을 뒤적여 다시 끄집어내고 또다시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새집으로 옮겨 집들이할 때 언니는 “집이 아니고 모델하우스 같잖아. 집엔 손때 묻은 것들이 늘려 있어야 푸근하고 정감이 가지.” 한다. 조각을 전공한 언니 집에는 대학 시절에 만든 몇몇 아끼는 조각작품이 진열되어 있고 언니가 그린 유화 그림까지 갤러리처럼 벽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방 한 칸 가득을 캔버스와 틀들이 채우고 있어 가끔 들르면 늘 가득 차 있고 푸근했다. 그러다가도 나중 이 뒷정리는 누가 할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형제라도 다 다르니 그만두고 말았다.
형제도 그러한데 다른 이에게 유품 정리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연재물을 쓰고 있는 그 유품 정리사는 고인에 대해 최대한 담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고인과 쓸쓸히 남겨진 유품들을 연결해서 들여다보면 감정 소진이 너무 커서 다음 일을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식들을 위한 배려인지 평소 엄마의 성품 때문인지 정갈하게 남아있던 엄마의 유품들은 나의 뒷자리를 늘 다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