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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넋두리와 글쓰기의 경계, 또는 그 모호함    
글쓴이 : 김옥희    26-01-15 03:40    조회 : 929

             넋두리와 글쓰기의 경계, 또는 그 모호함

                                                                                            김옥희

 

 큰시누이는 올해 87세이다.

 6남매의 맏이이고, 눈먼 시어머니와 5남매가 있는 시댁의 맏며느리이다. 발밑에 일이 차고 넘치는 과수원집에서 맏딸은 살림 밑천이었고 아들은 집안의 상전이었다. 그런 친정어머니 밑에서 큰시누이는 쉴 틈이 없었다. 과수원에 나가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부엌살림과 동생들 돌보는 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리고 손이 달리는 수확기면 어린 시누이의 등은 늘 젖어 있었다. 동생들 편으로 일꾼들의 밥과 새참을 맞춰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어머니가 밥과 찬을 준비해두고 과수원으로 내려가셨지만 작은 체구에 얼마나 동동거렸을까?

 그러다 그녀는 홀어머니를 모시며 4남매 동생들을 건사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직장이 번듯하고 선한 눈매에 끌려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하던 남편이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로 끝나자 시어머니는 충격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며느리 탓으로 돌리며 수시로 괴롭히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남편은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다. 품고 있던 아이들을 내려놓고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되자 큰시누이의 가슴에는 멍울들이 켜켜이 쌓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 처음 큰시누이를 만났던 곳은 그녀가 운영하는 운동화 가게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누나 집에서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연고지가 없는 부산에서 기댈 곳이 그곳밖에 없고 누나가 힘들게 시집살이했는지도 몰랐다고 늘 미안해했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동생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속살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잡은 손을 쥐고 옆자리에 나를 끌어당겨 앉히고는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굴곡진 서사를 이어갔다. 그녀의 눈물이 당황스러웠지만 힘들게 지내온 삶에 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거친 손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결혼 후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묵은 이야기는 지루해지고 공감대는 희미해져 갔다. 가끔 모이는 가족 모임에서 다들 그녀 옆에 앉기를 꺼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가게가 애들 큰 삼촌 것인데 명절에 자기 식구들 거느리고 집에 오면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우는 내 새끼들 밥 반은 덜어가며 내가 키우다시피 해서 장가보냈는데.”

 “늦게 일 마치고 혼자 남은 밥 한 숟갈 목에 넘길 때, 오그리고 자는 애들만 아니면 그 자리서 꼬꾸라져 죽고 싶었어.”

긴 한숨을 몰아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녀의 시어머니 신발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에 다다른다.

 “현관에 있는 시어머니의 신발을 보면 거꾸로 놓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 들더라고.”

그러면서 신발코가 현관으로 향하면 상여가 나간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들려줬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시댁 큰조카의 결혼식 끝에 뒤풀이로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처음 노래방을 접한 큰시누이는 무척이나 신이 났지만,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동생들이 부추기자 마지못해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연달아 세 곡을 불렀다. 음정 박자 맞지 않는 노래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두 번째 노래부터는 울음이 터지는 듯 흐느끼며 부르기 시작했다.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며 마이크를 꽉 잡고 놓지 않고 서 있자 막내 시동생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마이크를 받았다. 그 후로 큰시누이는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도 노래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쌓였던 감정의 응어리가 휘몰아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듯 집안 행사로 뒤풀이가 있으면 마이크는 당연히 그녀 몫이었다. 음정 박자는 여전히 맞지 않고 악을 쓰며 부르는 노래에서 나는 그녀의 가슴에 울음이 되지 못하고 가라앉은 돌덩이들이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주민센터에서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웠다며 시간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보내왔다. 카톡 소리에 몇 번 새벽에 잠을 깨어 설치게 되면서 그 후로 무음으로 해놓았다. 예전 생각이 들면 갑자기 화가 나고 가슴이 저렸고 잠들 수가 없노라고. 그리고 시어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넋두리들은 두서없이 올라오는 감정의 나열이었다.

동서들도 수시로 오는 큰시누이의 카톡으로 힘들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실버 센터에서 컴퓨터 활용법과 워드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오랫동안 한 자 한 자 공들여 가슴속 이야기들을 써 내려간 그 글들은 그녀 딸의 권유로 몇 년 전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고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그 책은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감정의 뭉치 들은 걸러내고 본인을 힘들게 한 것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시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써 내려갔다.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한 어머니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든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그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화풀이는 나에게 할 수밖에 없으셨겠지. 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서운하고 서러웠는지.”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 책이 가끔 생각났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나의 글쓰기는 그녀가 보여준 감정 포효의 어느 단계쯤 와 있는 걸까? 카톡으로 넋두리를 늘어놓아 주변을 힘들게 했을 즈음인지, 노래방을 전전하며 목청껏 감정을 소진할 무렵인지? 아니면 나는 과연 문학의 언저리에 발이라도 딛고 있는 건지.

 


박정옥   26-01-15 15:32
    
김옥희 선생님
벌써 4편의 작품이 올라왔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빛나는 선생님의 옥고를 또 기다리며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김옥희   26-01-15 16:12
    
선생님 감사합니다.

합평받고 퇴고까지 쉬운 길이라 여겼는데  등에 땀이 나게하는 오르막이 있네요.
한 편 더 잘 마무리짓고 쓰러지려고 합니다.
수업때까지는 깨어나겠지요? ^^
제인아   26-01-21 10:38
    
작은 체구에 얼마나 동동거렸을까?
  한동안 여운이 남았던 문장이었어요.
  좋은 문장 하나만으로도 글이 빛날 수 있다는.....
김옥희   26-01-21 11:13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긴 생머리의 모습으로 제 앞자리에 앉아있던  선생님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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