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비가 내리는 꾸물꾸물한 날씨 때문에 전등을 켜고 화상 강의에 입성,
문이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달려오신 문우님들, 아 글씨~ 5분만 지나면 꼴찌랍니다!
장**샘이 우연찮게 집을 한 채 취득한 사연을 흥미진진 들었고요.
젊어서 아직 백신 순서가 안 온다고 하셨던 교수님께서 드디어 화이자 맞으시는 날,
수업 끝나고 편집회의는 부득이 불참하신다는 말씀.
그리고 오늘 베스트 드레서는 피츠버그의 박** 샘이었지요?
다음 주부터 화려한 빨강을 입고 오시면 경쟁이 치열해질 듯합니다.
합평은 오늘도 진지, 열렬, 열공 모드로 뜨거웠습니다.
(1부) 제 6강~9강. 독립전쟁에서 건국까지
188센티의 큰 키에 당당한 체구로 어디서나 돋보인 조지 워싱턴(1732~1799), 그는 타고난 판단력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1789년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장일치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병정놀이에서 항상 대장 역을 했던 워싱턴은 정규 학교 교육은 초등과정 정도. 역사, 윤리, 수학 등에 재능을 보였는데 아버지가 11세 때 죽고 어머니는 아들 유학에 반대하였다. 이복형 로렌스가 이 윌리엄 집안으로 장가 들자, 워싱턴은 자주 들락거리다가 거부 토머스의 호감 얻어 독학으로 측량사가 되어 거부 토머스의 토지(The Shenandoah Valley)를 측량. 16살 워싱턴의 첫 사회생활이자 돈벌이였는데 훗날 전쟁에 나가서 큰 도움이 되었다.
병정놀이에서 항상 대장 역을 했지만 3살부터 살았던 마운트 버넌의 농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4살 위의 이복형 로렌스가 죽자, 형의 직업이었던 식민지 총독의 부관 임무 중 일부를 떠맡았다가 이듬해 스무 살의 나이엔 워싱턴 소령으로 임명.
27살에 부유한 과부 마사 커스터스와 결혼하여 당대 미국 최대 갑부 중 하나가 되었으나 워싱턴과 사이에선 아이를 낳지 못했다. 아내가 사별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두 자녀를 입양해 키웠는데 그 후손들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독립전쟁을 할 때 뜻밖의 행운으로 열세를 딛고 위기를 극복한 적이 많았다.어쨌든 조지 워싱턴은 전술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전략적 판단력과 친화력, 리더쉽으로 말많은 13개 주를 단합시켜 독립을 쟁취했다.
1797년 두 번에 걸친 임기가 끝나자 모든사람들이 사망할 때까지 종신 대통령직 머물러 줄 것을 간청했으나 깨끗하게 물러났는데 1798(66세) 때 프랑스와의 전쟁 위기가 닥치자, 워싱턴을 다시 총사령관에 임명하자 “내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피를 조국에 바치겠다.”라며 수락.
*1799(67) 2월, 자필 유언장 작성. 12월 14일 “죽은 후 사흘이 되기 전에 묻어주오”라고 한 후 서거. 악천후에 농장을 말 타고 순시, 인후염, 악화로 죽음. 의사들이 당시 치료법인 정맥 절개로 피 뽑기, 도리어 쇠약 부추김.
**유언장, “개인 시중을 든 윌리엄을 노예 신분에서 즉각 해방하고 그에게 연금 30달러를 줄 것이며, 아내가 죽으면 나머지 노예들도 해방시켜 달라.”
(2부) 합평
*박진희/민경숙/허미희/최 진/ (존칭 생략)
*한국산문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