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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이 이미 빼앗겼고(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21-05-18 23:49    조회 : 4,298

오늘 미세먼지는 좋음, 평론반 출석률도 좋음,

호주에서 젊은 새 회원이 오신 것도 좋음,

꽃이 피듯 꾸준히 새 식구가 늘어가니 좋음,

좋은 일들이 많은 5월입니다.  보고픈

몇몇 분들이 안보이니 조금 안 좋음...그러나 미국 독립운동의 역사와 문학 공부는 계속 이어집니다.

라파예트는 아들 이름을 조지 워싱턴으로 지었다. 얼마나 존경했으면 그랬을까.

미국 독립 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운 라파예트, 그가 조지 워싱턴을 만난 것은 20살 때였다. 용기병(Dragoon)중위였던 그는 매년 실시하는 부대 훈련을 메츠(Metz, 로렌 지역)에서 하던 중 현지 사령관 초청 만찬에 참석 했을 때 미국의 대영 반란이 화제였는데 그는 내 마음이 이미 빼앗겼고 깃발 아래 참전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 동기는 아버지가 영군에 의해 죽은 것, 프리메이슨 회원 정신 등으로 추측. 주변의 갖은 반대와 방해 물리치고 승리호(La Victoire)로 출발(1777.4.20.)

청년 라파예트는 영어도 서툴고 경력도 별로지만 열정적이고 겸손하여 워싱턴에게 호감을 사고 12월에는 라파예트에게 장군 지위를 부여받자 “I am here to learn, not to teach.”라고 응수. 헌신적인 전투에 소장 계급.

1778.3, 프랑스는 정식으로 미국 독립전쟁 지원하고 참전했다. 헌신적이고 용맹하게 전투하여 대륙회의로부터 “gallantry, skill and prudence”란 찬양받았다.

라파예트는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에 맞서 싸우면서 전투 지휘 능력을 키워나갔다. 더 많은 군인과 함대, 보급품이 필요 하자 1779, 라파예트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라파예트를 직접 만나 미국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라파예트는 프랑스 최정예부대원 6000명을 받아 냈다.

1780, 라파예트는 원정군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와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독립전쟁 최후의 전투인 요크타운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는 라파예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라파예트가 조지 워싱턴과 미국 독립운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백악관 앞의 라파예트 스퀘어 등 미국 전역에 수십 개의 라파예트 이름을 딴 도시와 대학, 기념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2) 합평

이영옥/국화 리/민경숙/이문자(월평)/하광호/김숙(월평)/소지연(존칭 생략)

 


곽미옥   21-05-20 20:44
    
ㅎㅎ.. 반장님 후기를 재밌게 시작한거도 좋음.. 그런데 선생님들께서 후기댓글 안하시는건 안 좋음..
    이번 후기엔 멀리 미국서 진희 샘 아직 안들어 온것도 안 좋음... ㅋㅋ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장군 라파예트는 두 나라의 영웅이군요~ 대단한 공적이네요.
    갈수록 흥미진진해 지는 미국역사네요.
    또 비 내린다니.. 날씨따라 맘까지 우울해지는 시간이네요~^
     
오정주   21-05-22 21:56
    
ㅋㅋㅋ 미옥총무님 댓글 좋음.
  댓글 안 달고 계신분들께 투정 부린 것도 좋음 .
  진희샘은 분명 오실거라 미리 좋음.
  비가 오고나면 나무들이 더 푸르러질거라 좋음. 우울해진다면 안좋음
  그러나 보나마나 곧 웃을 거라 벌써 좋음^^
박진희   21-05-21 19:17
    
일사천리로 쓰신 반장님의 후기 좋아요. 어떤 답글을 달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곽미옥 총무님 덕분에 결정했어요^^
라파예트 아버지가 그가 2살때 세상을 떠나 조지 워싱턴에게 부성애을 가지고 미국독립전쟁에 혁혁한 공헌을 세웠는데 미국 어느 싸이트에서는 라파예트가 양성애자라고 ㅠㅠ 이런 정보가 헷갈리게 하네요. 무엇보다 그가 '미국 최초의 시민권자', 좋아요! 라파예트 할머니가 결혼을 서둘러 17살에 결혼시켜 19살에 미국에 와서 많은 전투에 참석. 그의 아내 아드리엔 (Adrienne)은 15세에 결혼. 프랑스 군중들이 베르사유궁 습격때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를 구출및 왕의 해외탈출 시도사건으로 비판받음. 이 나라 저 나라로 끌려 다니는 남편을 위해 나폴레옹에게 간곡한 호소도 하고 겪었던 투옥과 후유증, 병으로 고생. 여전히 젊은 그녀가 죽기 전 날, 남편에게 "Je suis toute a vous (I am all yours)" 이 말이 가슴에 남네요. 진실한 사랑을 한 라파예트와 그의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며칠을 뒤척였습니다. "즈 쓰이 뚜따 브!"
     
오정주   21-05-22 22:44
    
즈 쓰이 뚜따 브!  이 말을 들으니 토지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용이가 월선에게 한 말, "니 여한이 없제?","야, 없입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그게 바로 (I am all yours) 겠지요?
  진희샘 오니까 우리는 늘 좋음^^
          
박진희   21-05-23 13:17
    
역시 우리말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진정한 예술가의 비교가 좋음^^ 
반장님과 총무님이 챙겨주시니 좋음^^ 좋음으로 살펴가는 길이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