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타자를 정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대학교수 콜먼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믿고
자신을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종 차별주의자와 성적 변태자로 몰려 파멸합니다.
콜먼 사건은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로 들끓던 1998년에 일어났습니다.
로스는 성적으로 방탕하던 사람들까지도 마치 자신들은
윤리적, 성적으로 흠 없는 도덕군자인 것처럼
클린턴과 르윈스키를 비난하는 운동에 동참했다고 꼬집었습니다.
클린턴의 성적 방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로스이지만
자신만 옳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타자의 삶을 망치는 사람들의 문제점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만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휴먼 스테인>>은 맹목적인 독선과 완고한 도덕적 우월감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상기시켜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쉽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논점 이탈의 오류’를 저지르고 사는지 깨닫게 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두 종교의 신앙을 모두 인정하면서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화해와 가능성을 찾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타자를 죽이는 것과
종교를 통해 인생의 고상한 목적을 찾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자
2차 십자군 원정 때 잠시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보두앵 왕과
1187년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 술탄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참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적, 정치 이념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면서
킹덤 오브 헤븐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두 지도자가 체결한 평화조약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오히려 중세에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사라센 지도자들이
상호존중의 마음과 고결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인간의 모든 편견을
순진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비판한 소설입니다.
인종 차별이 심하던 193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앵무새를 편견의 피해자인 이 세상 모든 약자나
소수, 외부인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스카트의 아버지의 말을 통해
독자는 타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타인을 이해하며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통해 독자는 역시
경직된 독선이나 눈먼 정의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절대적 진실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경직되게 하고,
우리의 시야를 단색으로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에코는 경고합니다.
이 세상에 고정된 단 한 가지 해석이나 절대적 진실만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인정하고
나는 절대적 진실이고 타자는 허위이며 틀렸다는 편견과 독선이
타인에게 폭력과 횡포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