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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함께 님과 함께(종로반)    
글쓴이 : 선점숙    18-02-14 19:14    조회 : 1,623

딥러닝실전수필(02. 08, 목)

-신과 함께 님과 함께(종로반)


1. 신스틸러 이덕용 언니

교수님은 역대 관객 수 2위(2.8 현재 1500만여 명)를 기록하며 흥행 질주 중인 영화 <신과 함께>에 왕언니 이덕용 님이 출연한다고 선언해 ‘깜놀‘! 알고 보니 다름이 아니오라 교수님이 쓴 칼럼에 신스틸러(scene stealer : 주연 같은 조연)로 등장한다는 거디었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의 글에 카메오나 엑세트라가 아니라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한다는 것이 ‘이승에서’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 1월 23일 현재 누적 관객 수 1362만 4690명을 돌파하여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는군요. 영화는 주호민 원작의 웹툰 <신과 함께-저승 편>을 대폭 각색하였습니다. 주인공인 저승 세계의 국선 변호사를 등장시키지 않고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 이야기로 연결하였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저승차사들의 인본주의적 감성,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군대 총기사고와 은폐기도 같은 먹먹하거나 코끝 찡한 감동 코드를 적절히 배치하였습니다. 영화의 흥행세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얼마 전 수필 인문학 강의 때 있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마침 니체의 사상을 웅변하는 “신은 죽었다(Tod sind alle Goetter)”라는 말을 설명하던 대목이었습니다. 니체는 기독교가 약한 사람을 세뇌하고 합리화한 ‘노예도덕(Sklavenmoral)’이자 화려한 약자 코스프레일 따름이라고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세상을 뒤집는 비판적인 선언을 했죠. 조금은 알쏭달쏭하며 위험하기도 한 니체의 말을 설명하던 차 변수가 생겼어요. 수강생 중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교수님요, 신이 죽었는데 또 죽나요?”

순간 교실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질문하신 분(이덕용)은 일제강점기 때 ‘소학교’를 다니셨어요. 80이 넘은 비교적 많은 나이에도 어린 수강생들을 잘 챙겨 ‘왕언니’로 통하며 신망이 두터운 분이었답니다. 그분은 조상신이나 토착 신, 성주신 같은 ‘출퇴근이 자유로운 자택 근무 신‘을 떠올렸던 모양입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며 난감하더라고요. 죽은 니체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독일어가 달리기도 하고.... 어쨌거나 답을 해야겠지요. 당황함을 감추며 얼결에 나온 말이, “아, 예. 신은 두 번도 죽을 수 있습니다. 지가 신인데 뭘 못하겠어요?”

-자유 칼럼(2.7)에 실린 글 <신과 함께 임과 함께>에서 발췌


2. 새야 새야

이어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 준비(무슨?)도 할 겸 옛 기억 속 설날 풍경을 다룬 교수님 글 <새야 새야>를 가차 없이 합평하며 수필작법의 이모저모를 공부하였음.

새야 새야

1. 마음속에 빛바랜 액자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어른 사내의 모습이 화인(火印)처럼 박혀 마음을 헤집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설날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는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며 놀았다. 갑자기 대문 주위가 시끌시끌했다. 얼마 전 대문 옆 감나무 가지에 죽은 구렁이가 새끼줄처럼 걸려 있었는데 비슷한 일인가보다 했다. 이번엔 그런 일이 아니었다. 낯선 어른 사내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검정 낡은 외투를 입고, 얼굴에 수염이 삐죽삐죽 돋았다.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두 볼은 꺼져 광대뼈가 불거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집안 남정네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중략)

2. 언제부터인가 뒤에 와 있던 할머니가 앞으로 나섰다. "에구 자네 왔는가?" 아는 체를 하시고는 사내의 손을 끌어 사랑채로 데리고 갔다.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할머니가 떡국과 무짠지 반찬을 차려 주었다. 사내는 처음엔 마땅치 않은 듯 오물거리며 떠먹기 시작했는데 숟가락질이 빨라지더니 삽시간에 대접을 비웠다. 할머니가 말했다. "참 유별난 사람이구 망. 요것이 무슨 꼬락서니당가?" 그는 입 주위를 실룩거려 무엇인가 말하려 하는 것 같더니 그만두었다. 요기를 마치자 할머니가 어찌어찌 타이르는가 싶더니 그의 손을 잡고 대문으로 데리고 갔다. 막판에 한마디 덧붙였는데 꾸짖는 것은 아니었고 부탁 조의 말투였다. "자네가 하모 요로코롬 왓싸면 쓰것는가?"

(중략)

3. 사내는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다 쓰다 말없이 대문을 나서던 그가 힐끗 나를 보았다. 흐릿한 눈에 잠깐 빛이 들어왔다가 스러졌다.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니가…, 너로구나. 왔다 갔닥 캐라…, 알것냐?" 사내가 비로소 입을 연 것이다. 가래 끓는 목소리가 잇 새로 새어 나와 듣기에 거북했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입을 씰룩거려 웃으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소리가 되어 나오진 않았다. 이윽고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휘둘러보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나가…, 입이 백 개라도, 하먼 무슨 할 말이 있것소." 힘겹게 말을 마친 후 걸음을 옮겨 놓았다. 더없이 느린 걸음이었지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구경꾼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우리 집 개 벅수가 사내를 쫓아가는가 싶더니 이내 돌아와 몸통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중략)

4. 이상한 사람이 왔다고 말해주었지만, 봉사인 이모는 기타 부타 말이 없었다. 눈 사위가 붉어지고 무엇을 보려는 듯 몇 번 눈을 깜빡였을 뿐. 말을 전해주고 나서 어른 사내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한바탕 빗속에서 놀고 집에 와보니 이모가 툇마루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늘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모는 보이지 않는 눈이긴 하나 어디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는 평소보다 오래 계속되었다. 역시 끝까지 부르진 않았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창포~ 장수~ 울고 간다~

(중략)

5. 이모부라 불린 어른 사내는 그 후 보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친척 집으로 옮겨 중학교에 다녔다. 4.19 나던 해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방학 때 집에 오니 할머니가 일러주셨다. 이모는 좋은 곳으로 갔다고 한다. "느그 이모는 하먼, 인자 '볼 수 있는 세상'으로 갔다 이 말이제!" 참으로 이상한 것은, 처량하게 노래를 부르던 봉사 이모보다 빗속에 발을 끌며 떠나가던 검정 외투를 입은 사내의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속 깊이 들어와 앉았고 더 자주 생각난다는 것이다.

*서정적 분위기의 콩트수필, 또는 서사가 있는 서정 수필이라고 할 이 글에는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써놓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많은 문학적 장치가 배치되었다. 형상화, 의미화, 정보와 측면에서. 세밀히 따져보기로 하자. (이하 강의 내용 요약정리)

문단1 : 우리 수필에 부족하다고 질타받는 상상력을 동원한 핍진(逼眞)한 묘사의 전형이다. 사실 컴퓨터 앞에 앉은 순간 상상력은 가동되고 있다. “수필은 사실만을 기록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40~50년 전 오래된 일을 이처럼 정확히 기억하냐? 허구(거짓)가 끼어든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그것마저 배제하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냐고요?

문단2 : 서두(문단 1)에서도 설날 찾아온 낯선 사내에 대해 형용을 하였지만, 이 문단에서는 사내의 떡국 먹는 모습을 통해 사내가 처한 남루하고 곤궁한 형편, 할 머니의 부탁 조 꾸짖음에서 사내와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 마뜩잖지만 그런 다고 함부로 내칠 수도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문단3 : 사내가 나를 보며 던진 말 “니가..., 왔다 갔닥 캐라…, 알것냐?"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이 섞여 있다. 행색과 말투에서 사내가 객지를 떠돌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잠깐, 개 벅수는 뭐 잘났다고 왜 이 판국에 등장해 사내 를 쫓아갔다 하릴없이 돌아와 물방울을 흩뿌리는가....? 한갓 동물인 개도 돌아 올 집이 있다는 함의를 감추고 있다. 그로 인해 정착하지 못하는 사내의 비극 성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디었다.

문단5 : 이 글에는 두 개의 결미가 있다. 무슨 말인가? "느그 이모는 하먼, 인자 '볼 수 있는 세상'으로 갔다 이 말이제!"에서 끝나도 애틋한 여운을 남길 법하다. 여느 수필은 대충 이 지점에서 막을 내린다. 아니면 윗부분(문단 4) ‘새 야~ 새야~’노래를 부르는 대목으로 소급하여 끝나거나. 그러나 이 글의 결미 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와 앉은 ‘빗속을 발을 끌며 떠나 는 사내’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개인의 체험(함께 사는 친인인 소경 이모)이 사회적 약자(이모부이자 떠돌이인 낯선 사내)에 대한 연민을 일구며 보편적인 주제로 확대된 사례이다!!!


3. 종로 반 동정

추운 날씨와 명절 전이라 그런지 강의에 못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발이 있듯, 강의실이 텅 빈 듯했다. 문우 한 분이라도 빠지면 강의실이 허전하다. 그 허전함을 메우듯 교수님의 강의는 더 열정으로 뜨거웠다. '새야 새야!' 마지막 부분의 따뜻하고 진한 감동이 강의실을 채웠다. 그 기운을 안고 ‘설 잘 쇄라.’는 명절 인사를 하며 모처럼 뒤풀이 없이 헤어졌다. “설 명절 잘들 쇠세요.”


김기수   18-02-14 19:37
    
'신과 함께 님과 함께', '새야 새야' 두 글 읽고
마음이 짠하면서 감동 먹었습니다. 역시
고수님의 필법과 전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느낍니다. 항상 진국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도 후기에 강함을 보이고자
선착합나다. 교수님, 문우님들 설 명절 잘 쇠시고
건강유의하시고 만사여의 &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안해영   18-02-24 19:51
    
김 선생님 겨울을 다 보내고 봄이 오는 날 뵙게 되겠네요.
윤기정   18-02-15 06:26
    
따뜻한 무언가의 느낌이 강의실에 가득했었지요. 그런 걸 감동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네요. 좋은 예술 작품은 다시 봐도, 들어도, 읽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신과 함께'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원작이 만화라고 들었습니다. 비단 이 영화 뿐 아니라 많은 영화들이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어렸을 때 만화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나 보는 걸로 배우고 멀리 했습니다. 만화작가나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군요. 문화의 한 영역으로 인정 받는 만화에 대한 선입견, 고정관념을 오래 깨지 못하고 살았네요. 고우영 화백의 수호지를 열독하던 생각으로 새로운 문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재에 아들이 애들 때보던 만화가 그대로 있으니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할까! 후기 고맙습니다.
     
김기수   18-02-15 12:43
    
난 지금도 약수동 골목길 초입에 있던 만화가게가 그립더구만! 시간만 나면 그곳으로 달려가 만화책 들고 읽던 추억, 그리고 만화가게 누나가 조금 이쁜 생각에 자주 찾은 것 같은 기억. 만화 속에서 이성이 눈뜨기 시작한 공간. 가는 세월에 모두들 묻혀 버렸네요. 이제는 카르페 디엠! 모두들 설 명절 잘 쇠시고 건강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 하시기 바랍니다. 임과 함께~~
     
안해영   18-02-24 19:58
    
햐~ 어쩌면 여기 또 하나의 나를 보는듯한 만화 경멸 자가 있었군요.
나도 만화는 말썽꾸러기들이나 보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나처럼 착하고 좀 모자라는 순둥이는 만화 같은 것은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크크크킄
지금도 만화를 보면 이상하게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만화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래도 글과 그림과 그 틈새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헤아리기 싫어서 일 것 같네요.
한 페이지에 퍽~~!하고 주먹질하는 것, 또는 흑~하고 우는 장면 이런 것들이 영 서툴렀거든요.
안해영   18-02-24 20:07
    
드디어 덕용 언니가 교수님 작품에 신스틸러(주연 같은 조연)로 등장.
수업 시간에 가끔 놀라게 하는 질문을 하시더니 결국 한 건 올리신 덕용 언니.

소설적 수필을 읽을 때면 읽는 재미도 있고, 대화체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네요.
복선이 주는 의미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