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03. 08, 목)
-앗, 수필과 논문이 닮은꼴?(종로반)
아래는 교수님이 10여 년 전 추사 김정희의 간찰(簡札)에 대한 학위 논문을 지도하며 메모한 내용임. 메일 검색하다 우연히 꺼내보게 됐는데 수필과 학술 논문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움에 ‘화들짝!’ 놀랐다고. 하긴 같은 산문 영역에 있는 이웃사촌이니까. 그에 비교하면 시와 소설은 처가나 다른 동네. 처가 권력이 세긴 세지만요!
1. 좋은 논문을 쓰려면?
가. 정확성과 가독성(Correctivness & Readability)
글쓰기의 핵심은 저자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을 통해 제대로 정확하게 전달돼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글쓰기의 기본 요체입니다. 글의 논지가 명확지 않아 혼란스럽다거나 난삽하면 글쓴이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간결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인용 사례에는 틀림없는 준거가 있어야지요.
논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맞춤법에 맞게 쓴 글이 아니면 품격이 떨어집니다. 공소한 미문(美文)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논문을 포함해 모든 글의 제1 미덕은 가독성입니다. 누가 읽어주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죽은 글입니다. 글 쓰는 일 역시 서예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짓는 일(作文)은 흐름이자 선분이니까요.
나. 창의적 아이디어(Idea & Creativity)
내용적인 측면이자 글의 핵심입니다. 새롭고(New) 낯선 것(Unfamiliar)이 아니면 주의를 끌지 못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을 포착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모든 것의 원류를 종합 섭렵한 뒤에나 가능합니다. 물리학이나 공연예술의 경우에는 번뜩이는 천재가 희귀한 순간에 얼핏 영감과 조우할 수 있겠으나, 서예나 문학의 경우는 다릅니다. 필생의 노력을 쏟아 붓고 혼융(Chaos) 상태를 거친 후 새로운 질서와 전통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추사가 바로 그런 분이에요. 어떻든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작업(그러니까 이번 논문)에서도 '남들이 착안하지 못한' 시각과 방향성이 엿보여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다. 보편타당성(Ubiquity & Universality)
그러나 새롭고 낯선 관점과 시각이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져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각도의 관찰이나 실험적 방식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문학)를 건드려야 하고 명명백백한 증거자료(학문)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개인을 둘러싼 주위환경은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되도록 성과를 헐뜯으려 하고 때로 시기합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도 헤아려야 하는 소이(所以)입니다.
그러니까 사고에 사고를 거듭한 후 극의(極意)에 이르렀다고 어렴풋이 느끼는 순간 그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른바 도가에서 이야기하는 무극(無極)의 경지가 아닐까 자문해봅니다. 저도 항상 글 쓸 때마다 염두에 두지만 과연 쉽지 않습니다. 간추리면, 보편타당성의 획득을 위해서는 치열한 사유와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 증거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2. 합평
문인화, 사의적 그림(김순자)
액자 구조를 부분 도입하고 주제를 담은 글이다. 문인화는 사실에서 사의로 가는 그림이라는 깨우침을 얻고 그리기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림을 내려 그릴 때는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대담하게 단숨에 이루어 내야 한다며 필법의 연관성과 기세의 접합성을 이야기한다. 군데군데 의미가 겹치는 부분은 줄여 써야 할 부분도 있다. 또 제안, 전철, 허실, 쾌만, 강유, 병원 같은 동급의 내용은 반점 보다는 가운뎃점으로 처리하고 한자를 병행하면 좋겠다.
이사(강정자)
문명의 역습에서도 자연 친화적 삶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한 글을 막힘없이 잔잔하게 그려낸 글이다. 온갖 편리함이 다 갖춰진 주상복합 주거지에서 살 때 보다 조금 불편해도 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살 때가 더 좋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자녀들도 부모님이 만들어 주었던 환경을 따라 하고 있음을 보고 그들 나름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고 있음에 만족해한다. 다만 요소요소 강조점이 없음이 아쉽다. 주제를 부각하는 절실함과 내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있으면 더 좋겠다.
3. 종로 반 동정
문화인문학실전수필반으로 반 명을 새롭게 정비했다. 문화인문학실전수필반답게 좋은 글이 많이 써질 것을 기대해 본다.
3개월의 긴 호주 여행을 끝내고 김기수 선생님이 수업에 동참하여 반원 전원 출석으로 교실이 모처럼 꽉 찼다. 여전히 글을 내는 사람만 내고 있음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심기일전하여 새싹이 움을 틔우듯 종로 반 문우들도 글의 기운이 왕성하게 솟아오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