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문학실전수필(04. 05, 목)
-철학아 놀자!(종로반)
종로 반에서는 전반 1시간은 철학, 역사, 신화, 심리학 등 문화인문학 강의와 문학에 대한 일반이론, 수필 작법의 실례를 문우들의 참여하에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그렇게 해야만(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어쩌다가) 수필이 깊이를 갖게 된다고 하는군요!!!
1. 존재와 존재자, 현존재
존재와 존재자의 문제는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이 영원불변한다는 일원론(Monism)이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현실주의(Presentism)였다. 이것을 플라톤이 영원불변하는 관념의 이데아(Idea)와 변화하는 현상으로 나누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원리와 본질을 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하이데거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사유하면서 인간의 실존문제를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있다’와 ‘있음’, ‘없다’와 ‘없음’의 문제는 형이상학의 존재론과 그것을 인지하는 인식론의 핵심 과제다. 일반적으로 실재하는 상태로 존재하거나 실재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을 존재자라고 하고, 그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의미와 작용 그리고 존재자의 총괄을 존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존재자는 어떤 시간과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고 경험으로 만날 수 있는 개별적 개체나 특수한 대상을 말한다. 반면 존재는 그 모든 류의 총집합인 동시에 존재자들에 해당하는 ‘있다’의 본질이고 실재를 초월하는 초월적 개념이다. 그런데 존재자는 ‘주어져 있는(es gibt) 가상의 존재’도 포함한다. 존재자와 존재의 본질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서 추출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무엇을 인식하는 주체는 ‘세계 안에 존재(being - in - the - world)’하면서 경험을 하는 현존재 다자인(Dasein), 즉 인간이다. 그러니까 존재자는 인간이 경험하고 교섭하는 사물을 포함한 모든 현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사과’와 ‘용’이 존재하도록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존재’라고 하거나 ‘존재자 속에 존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존재자는 존재하면서(existing) 있는 것(being)이고 존재는 그냥 있는 것(being)이다. 또한, 존재가 ‘무엇이 되어 [becoming] 있는(being)’ 상태가 존재자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존재가 작용하여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있는 상태가 된 것이 존재자다. 존재하는 존재 하면서 있음을 강조하는 존유(存有, Being)와 현실에 실제로 ‘있는’ 존재(Existence)는 모두 존재(Being)의 다른 양태이다. 존재와 존재자를 연구하는 학문이 존재론(Ontology)이며 형이상학의 핵심이다.
(충북대교수 김승환 강의록 발최)
2. 존재론적 성찰이란?
조금 어렵죠? 엄청 어렵다고요? ‘존재론’은 존재하는 사물이나 대상의 본질(성질과 특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 그것들이(가상의 존재 포함) 어떻게 존재하느냐? 를 추구하는 철학의 흐름이자 형이상학의 핵심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념들이 일반화되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게 쓰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론가는 ‘자아의 존재론적인 성찰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고 엉뚱한 말을 해요. 이 대목에 왜 ‘낯설게 하기’가 나오느냐고요? ‘낯설게 하기’가 무슨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어쨌건 ‘존재론적 성찰’이 무엇인지 요약해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존재론적인 성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글을 쓸 때 말이에요.
계속 글이 어렵게 흐르는군요(막히는군요). 어쨌거나 ‘존재론적인 성찰’이란 한마디로 (여러 마디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정녕 내가 원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삶이 어느 지점으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가?’ 돌이켜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이르는 ‘참나(眞我)’를 찾는 구도의 방황이기도 하죠. 그렇게 되면 정체성의 혼란, 반성과 회한이 따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삶을 살리라 마음을 다져 먹기도 합니다. 그러다 언제 그랬나 싶게 되풀이되는 일상에 함몰돼 태연히 개념 없는 삶을 계속하곤 하죠. 우리의 삶이 정녕 그렇지 않나요?
3. 합평 및 동정
가. 회원 글 합평
약동 있는 삶(이천호): 다양한 화소의 배치. 생동감 있는 3D 입체적 표현
바람(윤기정):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 종로 반 우수작으로 자리매김 예감
나. 종로반 동정
출석률 100%다.
식목일에 봄을 재촉하는 비까지 추적거렸으니, 꽃을 잉태한 나무엔 마른 가지에 불을 댕긴 격이 되었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종로 반이 잘 되려는 징조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다. 약동하는 봄기운이 새싹 움 틔우는 소리로 역동적인 봄을 불러온다. 바람도 그냥 바람이 아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인가 했더니, 바람은 온 우주에 경계를 허물게 하고 다음에 올 것에 대비하여 긴장하게 한다. 봄바람이 너무 세게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