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고리키 4. 나의 대학들
고리키는 대학에 못갔지만 자기가 사는 사회생활 자체가 대학이라고 믿었다.
고리키의 이름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다.
걸핏하면 고용주들에게 얻어맞고 굶주리고 헐벗으면서 그는 러시아 생활의 어두운 면을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의 이 쓰라린 경험 때문에 '고리키'(쓰라림이라는 뜻)를 필명으로 삼았다. 10대 후반에는 카잔에서 제빵공과 부두노동자, 또는 야간경비원으로 일했던 그는 그는 비참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권총으로 자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인민주의자들을 만나 러시아 혁명사상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나, 나중에는 러시아 농민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상을 비판했다. 21세 때 카잔을 떠나 러시아 남부지방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막일을 하며 목숨을 이어 가다가 그루지야의 트빌리시에서 짤막한 소설을 지방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일류잡지에 뛰어난 작품 <첼카슈(Chelkash)>(1895)를 발표한 뒤, 그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첼카슈>는 항구에서 화려한 절도행각을 벌이는 어떤 도둑의 이야기로 이때부터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의 하층민들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칭송받는 고리키의 '떠돌이 시기'이다.
<26명의 남자와 한 처녀>(1899)는 여러 단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막심 고리키가 실제로 빵공장에서 일했던 체험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이런 작품들이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갑자기 높아졌고, 톨스토이나 체호프와 거의 같은 수준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스물여섯 명의 인부가 축축한 지하실에 갇혀서 하루종일 빵을 만든다. 스물여섯 개의 살아 있는 기계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주인은 그들에게 점심으로 내장을 주는 등 음식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것들을 주었고 어떤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동료에게 욕을 해대는 것 외에는 말없이 일만 했다. 그러나 서로 욕할 거리도 많지 않았다. 고된 노동에 무감각해지고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낙은 매일 아침마다 생글 웃으며 지하공장을 찾아와 빵을 받아 가는 16살의 소녀 ‘타냐’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장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병사 출신의 남자 하나가 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여자들이 자기한테 그냥 들러붙는다는 그런 호기를 부린다. 노동자 중 한 사람이 그녀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자 남자는 기한 내에 그녀를 넘어오게 하겠노라고 큰 소리 친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나 그녀는 평소처럼 매일 아침 빵을 받아갔고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26명의 인부들에게 모두 현관에 나와서 보라고 한다. 26명의 남자가 현관 벽에 몰려들어 마당을 살펴보자 타냐가 지하 창고로 들어가고 그다음 그 남자가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타냐는 기쁨과 행복에 빛나는 눈으로 몽롱한 듯 조금 비틀거리며 나온다. 26명의 남자들은 일시에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가 그녀에게 거칠게 고함을 질러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는다. 그동안 그녀를 숭배할 정도로 좋아했던 26명의 남자들은 순식간에 돌변해 그녀에게 쌍욕을 해댔다. 그들에게는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들 마음대로 그들의 소유로 생각했던 것이다. ... ...
<2부> 합평
배윤성/정아/문영일/이문자/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