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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키의 독살설(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24-10-30 23:42    조회 : 1,913

<1> 고리키의 말년

고리키는 톨스토이, 체호프와 함께 러시아의 국민 작가 3인으로 추앙받은 극작가다. 최하층민으로 태어났지만,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명작을 잇달아 선보였다.

1902년 발표한 연극최하층은 막심 고리키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밤주막으로 번역.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후 성공하자 공연 때마다 특별 허가 신청, 민중극장 공연 금지 등 조치. 20세기 초 러시아의 사회적 위기가 극심한 시기 사회에서 밀려난 밑바닥 인생을 묘사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삶의 목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사실주의 희곡이다. 이 연극을 맡은 여주인공과 고리키가 눈이 맞아 결혼. 유부녀이며 귀족인 여자(레닌을 지지하는 볼셰베키파)였으나 고리키의 두 번째 부인이 됨.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레닌을 지지했다. 그러면서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는 초연함을 보였다. 일생동안 충직한 볼셰비키로서 혁명문학의 선봉장이었는지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레닌과 고리키의 굳건한 동지애와 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갈등이 있었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제1차 혁명(1905)실패 뒤 카프리 시절의 고리키가 심취했던 건신론에 대한 레닌의 충고였고, 다음은 1917년 혁명 때의 노골적인 폭력혁명 반대, 그리고 내전 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폐결핵 요양을 구실삼아 나라 밖으로 가버린 사실 등이다.

 고리키의 생애에서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은 그의 죽음에 얽힌 비화이다. 2000년 대, 크렘린 궁에 안치된 제정 러시아 귀족들의 유골을 분석하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상당수 유골에서 수은 납 비소 등 중금속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치열한 궁중 암투에서 독살된 사람이 여럿이라는 소문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나왔던 거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막심 고리키도 스탈린의 지시로 독살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탈린 역시 공식 사인(死因)은 뇌일혈이었으나 자신이 키운 비밀경찰 총수에 의해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첫 부인에게서 얻은 남매가 다 죽어버린 뒤 외로이 남은 고리키는 스탈린과 겉보기에는 평온하게 지냈으나 그가 죽고 나자 시민들 사이에는 스탈린에 의한 독살설'이 유언비어로 떠돌았다. 그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치적 고단수인 스탈린은 이 소문을 정적 퇴치에 역이용하는 데 성공했다.

<2> 합평1

신선숙/문영일/

합평2 한국산문10월호

정아/이명환/조선근/이성화/임길순

 

 

 

 


오길순   24-11-01 03:49
    
단 한번 뿐인 타인의 인생을 함부로 하는 일은
역사 속에 엄연히 숨어있는 아픈 진실인가 봅니다.

고리키 톨스토이 체호프 다시 외워 봅니다.
     
오정주   24-11-02 17:48
    
고리키 마지막 시간,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간 내면을 깊이 탐구한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시간
 재밌었는데 좀 아쉽네요.
 벌써 11월입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