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춤추는 고양이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1905년 그의 운명 같은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로 이름 없는 고양이의 시선을 통해 인간을 면밀히 관찰하고 시대를 비판합니다. 고양이는 작가 소세키의 또 다른 자아처럼 러일 전쟁의 승리에 도취된 시대 분위기와 당대 지식인의 허세와 위선을 꼬집습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16면) 소설의 첫 문장은 고양이 화자의 시선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에서 처음 인간을 마주한 고양이는 그들을 ‘영악한 족속’이라고 묘사합니다. ‘미끌미끌해 흡사 주전자’ 같은 묘사는 인간에 대한 낯섦과 거부감을 상징하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판적 시각의 단초를 제공합니다.
이 고양이는 우연히 구샤미 선생의 집에 살게 되며 그를 비롯한 인간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학교 교사인 구샤미는 무기력한 인물로 소세키의 내면을 투영합니다. 구샤미의 지인들인 메이테이, 간게쓰, 오치도후는 2장에 등장하며 각기 다른 위선과 허세를 지닌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특히 메이테이는 허풍과 말장난이 심한 인물로 아는 척으로 가득 찬 지식인층의 허상을 보여줍니다.
고양이는 이런 인간 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건지, 세상에 섞이고 싶은 건지, 사소한 일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건지, 세상사에 초연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49면)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모순을 꿰뚫는 고양이의 시선은 이처럼 날카롭습니다.
2장에서 고양이는 주인이 먹고 남긴 떡국을 먹다 이 사이에 낀 곤란한 상황에 처합니다. 난감한 상황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다 네 가지 삶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얻기 힘든 기회는 모든 동물로 하여금 내키지 않는 일도 굳이 하게 한다,’ ‘모든 동물은 직감적으로 사물의 적합, 부적합을 예견한다.’ ‘위협에 처하면 평소에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다. 이를 천우(天祐)라 한다.’ ‘인고를 거치지 않은 안락은 없다.’라는 고백은 유쾌한 장면 속에 담긴 진지한 통찰입니다.
얼룩고양이에 대한 묘사에서는 아름다움과 감각이 살아 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곡선미의 극치였다. (...) 단정하고 정숙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도 벨벳을 무색케 할 만큼 매끄러운 온몸의 털은 봄의 햇살을 반사하여 바람이 없는데도 살랑살랑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58면) 이는 『풀베개』의 한 장면, 자욱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목욕탕에 실루엣을 드러낸 여성을 묘사하는 장면 (『풀베개』 현암사 104면)처럼, 소세키의 섬세하고 관능적인 문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 지식인의 자기기만을 꿰뚫는 이 작품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