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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의 병(평론반)    
글쓴이 : 오정주    25-12-23 23:15    조회 : 1,915

<1> 카잔차키스 (그리스 기행.마지막 시간)

 

25년이 저물고 있는 12,

조지 윈스턴의 December를 들으면 눈 내리는 풍경이 그려지고

슬프지 않고 담담하게 지나간 1년이 송이송이 떠오릅니다.

이제 한 주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지

그리스 기행 끝나는 게 조금은 아쉽네요.

그러나 카잔차키스를 다시 읽게 되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후기에 수업 내용을 요약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잡고 집중적으로 써보라는 교수님 의견에 동의하며. 오늘은 수필 소재로 좋다고 한 성자의 병에 대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아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

1차 세계 대전 후 빈에 체류하던 카잔차키스는 한때 얼굴이 심하게 붓고 입술이 부르트고 고름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병을 앓았다. 그는 이를 스스로 성자의 병이라 부르며 금단적 금욕, 영적 긴장, 내적 분열로 연결지었다.

성자의 병은 중세 수도자들이 선적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때 생긴다고 전해지는 희귀한 영적질병이다.

프로이드의 제자였던 정신 분석가 슈테겔은 이를 신체 질환이지만 근본은 심리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당신은 빈을 떠나야 합니다.”

빈이라는 도시는 지적.성적 억업과 과도한 자기검열이 있었다. 금욕적.영웅주의적 삶의 태도의 카잔차키스에게 병을 유지.악화 시키는 환경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성자의 병은 금욕과 육체적 억제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발생하는 상처나 궤양이다. 당시 카잔차키스는 영적 육체적 억제를 추구하는 삶을 살던 시기로 그의 내면적 갈등이 깊었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너무 의미를 요구해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

카잔차키스는 실제로 빈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고 병이 점차 사라졌다.

"영혼이 숨 쉬자 육체가 나았다."

 

어떤 병은 몸에 생기지만 어떤 병은 우리가 머무르는 자리에 생긴다.

카잔차키스처럼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인가? 지금의 고통은 정당한가? 이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가쉬는 시간마저 잘 쉬어야 할 과제가 되고 여행조차도 재충전이 잘 되었는가로 평가하는 질문들은 삶을 소진 시킨다.

중세의 성자는 신 앞에서 자신을 소모했다면 현대의 성자는 시스템 앞에서 자신을 소모한다. 현대인의 번아웃, 그것은 세속화된 성자 의 병이다.

도덕적. 철학적 과잉이 삶을 마비시킨다. 잘 살려고 하다가 삶을 앓는 병이라니...카잔카키스는 욕망은 있었지만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성자가 되기에는 너무 육체적이었고 인간으로 살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이상으로 너무 엄격했던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자기 자신에게 주지 못해서 생긴 병이다, 카잔차키스는 삶의 의미를 묻지만 조르바는 묻지 않는다. 살고 나서 웃거나 울거나 할 뿐이다. 의미는 조건이 아니라 부산물이다.

우리가 성자의 병을 앓지 않으려면 너무 잘 살려고 애쓰지 말고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먼저 자신에게 주는 것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 로마-이태리 기행을 시작합니다.****

 

<2> 합평 최인식/설영신/김봄빛/박은실/국화리/오정주/김대원(존칭생략)

*자기의 삶을 잘 살고 그대로 글을 써라.

*글의 내용이 서로 모순되면 안 된다.

관계없는 것은 과감하게 빼버리자.

 


오정주   25-12-23 23:35
    
카잔카키스는 훗날인 55세 66세에도 같은 증상을 겪었고
  일흔에 이르러서야 병의 정체가 드러났기에 '성자의 병'은 과잉 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상태를 정확히 가리킨다.
실제 고통에서 태어나 문학 속에서 살아 남은 메타포다. 카프카적 인간,번아웃된 지식인, 자기 검열에 지친 활동가...
오길순   25-12-24 11:05
    
영혼이 숨 쉬자 육체가 나았다.

그래서 우리가 글을 통해 숨을 쉬고 영혼의 안식을 얻나 봅니다.

성자의 병, 애달픈 한 생이여~애달프지 않은 사람 있을까요?

그래서 늘 명치가 아픈가 봅니다. ^^
박진희   25-12-25 04:05
    
여드름조차 없이 자란 저에게는 '성자의 병'이 닿을 수 없는 문학과 종교의 '성지'가 아닐까 싶네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씌어진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문귀가 아이러니하게도 저를 자유롭게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서 보는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는 것으로 기뻤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춤도 따라하고요^^

 반장님의 후기와 수고에 고맙습니다. "... 문학 속에서 살아 남은 메타포"를 향해 가볼까요?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