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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 (러시아 고전읽기반)    
글쓴이 : 심희경    16-12-02 22:17    조회 : 11,111

질투

유리 올레샤 (1899-1960)

 

1899년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엘리사베트그라드(현 키로보그라드)에서 폴란드계 몰락한 귀족 출신의 세무관리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가톨릭교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3세 때 유럽 느낌이 많이 나는 오데사로 이사합니다.

김나지움에 다닐 때부터 시를 창작하고 리셀레프스키 대학 법학부에서 2년간 수학할 때 시인 집단을 조직하고 바벨등과 교류하며 작가로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1919년 붉은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1922년 부모는 폴란드로 망명합니다.

1924년 혁명에 대한 낭만주의적 시각으로 가득 찬 첫 소설 <세 명의 뚱뚱보>를 발표하고 1927<붉은 처녀지><질투>를 발표합니다. ‘질투는 열렬한 찬사를 받았으며, 각색하여 <감정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호평은 독자들의 반응이 체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자 비난으로 바뀌고 이후에 발표되는 작품에도 혹평이 계속됩니다.

쓰는 작품마다 검색에 걸리자 탄원서를 낭독하지만 무시되고, 해빙기가 도래할 때 까지 거의 20년 간 절필합니다.

스탈린 숙청기간에 바벨을 비롯한 그의 많은 친구들이 사형당합니다.

1936년 올레샤의 작품들은 출판 금지되고 제 2차 세계대전 중 피난갔다가 돌아온 후 알코홀에 빠져 지냅니다.

1956년 판금이 해제되고 1960년 모스크바에서 가난과 술 속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합니다.

 

<질투>는 꿈과 낭만과 사랑과 질투 같은 낡은 감정들에 대한 노스텔지어와, 공리주의적인 새로운 가치들에 대한 수용과 숭배의 대립으로 시대의 모티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라져가는 혁명전 러시아의 가치체계와 새로이 정립되고 있는 소비에트 사회의 가치체계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보여줍니다.

 

책을 읽은 소감은

주인공들의 질투를 생각하다가 나의 질투를 생각했다. 잠들어 있던 질투의식을 깨워주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질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세대를 질투한다.”

초현실주의 같은 소설이다. 세상의 거대한 축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낙오자의 이야기 같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에게 너무 관심이 많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 불확실성과 불안을 느꼈다.”

검열이 심했던 시기의 작품이어서 몇 겹으로 꽁꽁 싸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질투는 초록 눈의 괴물이라는 오델로의 대사가 생각났다

문체가 혁신적이다. 심각한 얘기를 쉽게 던진다.”

기계문명의 발전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보인다.”

 

 

결석하신 분이 많아서 예술의 전당 오르세 미술관 관람은 다음 주로 미뤘습니다.

박윤정샘, 티타임 때 커피 콩빵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김은희샘이 번역하신 <<나기빈 단편집>><백발급구>입니다


박서영   16-12-05 21:30
    
소모적인 질투와 발전지향적인 질투~ 성장을 위한 질투와 그 함정에 매몰되어버린 질투~등등
 
 처음 시작은머리 아팠으나 집중하게 하는  새로운 형식과  섬세한 묘사등이 끝까지 가보게 하더군요.
 신입생 박현분샘이 생각나서 살짝 미소지으며 읽었답니다. 하필이면 첫 작품이 쬐끔 난해해서
머리에 쥐 좀 나겠다 싶었지요.  ㅋㅋ  그러나 멋지게 신고식을 하더군요 짝짝~
 톨스토이는 레빈(안나 카레리나)을 통해서 '성장'을 말하고자 했다네요. 왜? 성장은 인간에게 최고의 기쁨이기에~
촛불집회에 온 초대가수가 '지치지 말라. 우리가 여기 있는것은 더 높은 행복을 위해서다' 하더군요
하릴없이 바쁜중에도 작품을 읽고 우리가 만나는것도 조금 도 행복하기 위해서겠죠?
심반장님 감사합니다~
     
심희경   16-12-06 20:36
    
그래요.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고 만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죠.

<질투>에 대해서 한 논문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었네요.
'<질투>는 소비에트 공간 뿐 아니라 인식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체제에 대한 또다른 비판으로 남는 것 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 침묵하지 않는 광장의 촛불이, 비폭력의 비판이 아름답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고나면 행복이 더 가깝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