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체홉(1860~1904)
체홉의 <편지>를 특별한 곳에서 공부했습니다. 강원도 횡성의 맑고 맑은 산속 별장,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살 것 같은 박현분샘의 예쁜 황토 집이었습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주신 횡성한우와 킹크랩, 가리비 등을 초대해주신 분의 넉넉한 사랑을 느끼며 먹은 후, 참나무 장작으로 덥혀진 뜨끈한 황토방 아랫목에 다리를 뻗고 이불을 덮고서 군고구마를 까먹었습니다.
창밖의 눈 덮인 강원도의 산자락이 눈을 시원하게 했고, 창문 왼쪽으로는 정자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보였습니다. 오후의 햇살은 창가에 놓인 티 테이블 위로 떨어지고 방안의 풍경을 더욱 정겹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체홉의 <편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강원도 까지 먼 길 운전 하신 김은희샘의 보디가드로 오신 안동진 선생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귀여운 여인’에 이어서 세 번째로 접하는 체홉의 작품입니다.
안선생님은 먼저 이 작품을 한 단어로 어떻게 말 할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용서‘ ’인간‘ 등의 대답이 나왔고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비판‘ 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우리의 답변에 안선생님은 체홉의 작품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1880년부터 학비를 벌기위해 글을 썼던 체홉은 가쉽이나 유머러스한 가벼운 글을 독자에게 던져주었습니다. 그러다가 1894년부터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바뀌게 됩니다. 평생 동안 800편의 다작을 양산해낸 그는 우리가 얼마나 모순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지를 풍자를 통해 보여줍니다.
<편지>속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성직자는 모두 이중적 인물입니다. 훈계하는 내용의 편지를 놓고 ‘웃긴 짓‘을 벌입니다. 실제적인 효과가 없을 결과물(편지)을 책상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는 것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이 작품은 사제들을 비하하면서,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를 포착해냅니다. 하나의 논리만으로는 풍자가 되지 않습니다. 고상한 것과 유치한 것의 공존으로 풍자가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의 풍자는 문제를 제시하기만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체홉은 ‘소설은 내가 만든 전유물’ 이라며 대안은 독자들에게 맡깁니다. 이것으로부터 소설을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고 모더니즘이 시작됩니다.
1880년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나오고 인상파가 나온 시기입니다. 20세기를 준비하던 시기, 세상이 바뀌던 때 체홉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학자나 작가는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져야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독선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임, 패러다임이 따뜻한 것이 문학의 길이며 사회정의가 흔들렸을 때 침묵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으로 강의가 끝났습니다
강의를 듣는 동안 황토방의 온기가 몸속 깊이 스며들고 정신과 육체의 힐링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사한 것 중의 하나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들입니다. 러시아고전읽기반의 겨울날 횡성에서의 M.T도 세월이 흐른 뒤에 아름답게 남을 것입니다.
싸이드 메뉴와 간식으로 문어회와 명이나물, 파채 무침, 김, 고구마, 강정, 등등을 가져오신 샘들, 정성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