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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학기 제3강;수유리 한강 문학기행(용산반)    
글쓴이 : 신재우    26-03-25 09:38    조회 : 1,046
1.국내문학예술답사 10차 2026년 3월 23일/ 수유리 한강 문학기행.
  가.봉황각과 손병희 선생 묘소;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어린 한강을 데리고
     아침마다 맨손 체조하러 봉황각 언덕에 있는 손병희 선생 묘소로 갔다.
  나.봉황각을 마주하면 한강의 소설『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산봉우리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 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한강 작가 "10,11살 때 이사"하여 17년간 산집 방문; '삼양로 165길 38'
     (옛주소는 수유4동 22-3). 「한강 작가」가옥이라는 안내문이 있음.
  라.한강의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화계사와 한신대 방문.
2.한강이 유년시절에 겪었던 수유리집 언덕길, 구불구불한 골목길, 이 길의 체험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넣었다.

차미영   26-03-26 13:57
    
한강의 수유리 문학기행을 앞두고 『희랍어 시간』을 읽었습니다. 한강의 여러 작품 가운데 이 소설에 더욱 마음이 끌린 것은 순전히 제목에서 느낀 강렬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대(大) 히피아스』에 나오는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라는 구절을 소설에서 만났을 때 묘한 전율이 일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고 지적인 차원의 물음이지만, 그와 대화하는 히피아스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한 아가씨’처럼 눈앞의 구체성과 맞닿은 아름다움입니다. 『희랍어 시간』은 이 두 층위를 오가며 추상적인 언어와 상처 입은 인간의 섬세한 감각을 함께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시력을 잃어가는 희랍어 강사와 말을 잃은 한 여자가 희랍어 수업을 계기로 서로의 삶 가까이 들어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유난히 언어에 예민했던 그녀가 말을 잃게 된 배경에는 학창 시절 학교의 폭력적인 분위기와 어린 시절 백구가 죽는 장면을 본 충격이 얽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언어를 되찾고자 일상에서 멀어진 낯선 언어, 훼손되지 않은 표상처럼 여겨지는 희랍어로 향합니다. 남자는 열다섯 무렵 독일로 이민 갔다가 홀로 서울로 돌아와 사설 아카데미에서 희랍어를 가르치는데, 아버지에게서 이어진 유전적 내력으로 시력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한강이 그린 이 두 인물은 세상과 이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지 보여줍니다.

 소설 첫 문장에 나오는 보르헤스의 묘비명,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는 작품 전체의 긴장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여기서 칼은 두 인물 사이의 단절만 뜻하지 않습니다. 남자가 세상과 맺는 거리, 타인에게 다가서고 싶어도 건너지 못하는 고립까지 아우릅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인간 사이에는 메워지지 않는 균열이 있습니다. 『희랍어 시간』은 그 균열을 안은 채 타인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계기는 아카데미 건물 안으로 들어온 박새와 얽힌 장면입니다. 새를 밖으로 내보내려던 남자는 어두운 층계에서 넘어지며 안경을 깨뜨리고,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 처합니다. 그때 그녀가 그의 도움 요청을 듣고 그를 구해줍니다. 그 뒤 남자는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지난 삶을 여자에게 들려줍니다. 여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깊이 묻어 두었던 상처도 들여다봅니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벽이 잠시 옅어지며 서로의 고통이 가까이 닿습니다.

 이 소설에도 한강 문학이 보여주는 폭력과 상처, 소외와 단절의 아픔이 깔려 있습니다. 『희랍어 시간』에는 폭력의 순간보다 그 뒤에 남는 침묵과 균열이 더 짙게 드러납니다.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처를 지닌 타인 곁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이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