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블라디미르 마야콮스키(1893-1930)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마야콮스키가 1912년에 쓴 짧은 글의 도발적인 제목만으로도 그가 대충 어떤 스타일의 작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동진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로 우리는 어느새 마야콮스키에 빠져들었고, <빈대>를 읽는 동안 난해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도 서서히 풀렸습니다.
마야콮스키는 1893년 그루지야에서 몰락한 산림관리원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혁명 발발과 함께 14세의 나이로 러시아 사회주의 노동당에 입당하여 볼세비키에 가담합니다. 선전 선동 혐의로 세 차례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할 때 고전을 탐닉하면서 예술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출소한 뒤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합니다.
그의 첫 번째 희곡인 <블라디미르 마야콮스키-어떤 비극>에서는 자신의 두 가지 성격의 특성을 드러냈습니다. 밖으로 보여 지는 화려하고 오만한 멋쟁이와 소심하고 연약한 내면의 이중감정을 나타냄으로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정서를 보여줍니다. 막심고리키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두 개의 목소리로 말 하는 사람 같았다. 하나는 순수한 서정시인의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날카로운 풍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사실주의적 가치가 사라지고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기 전, 미래파가 나타난 시기였습니다. 과거의 권력을 뒤집어야 자기가 살 수 있는 시대였으므로 ‘기표(표시)가 기의(의미)를 지시’ 하는 사회적 약속을 깨부수고 “너희가 살았던 세상은 문제가 있다” 고 선언합니다.
이는 1909년 시인 F.T 마리네티가 르 피가로 에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이 시작으로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로써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과거와 아카데믹한 공식에 반기를 들고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묘지로 단정했으며 파괴운동을 벌일 정도로 과격 했습니다. 이들은 입체파의 표현기법 처럼 여러 시점의 움직임과 잔상에 집중하면서 보고 있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종합하여 한 장면 속에 여러 표현을 한꺼번에 집어넣었습니다.
마리네티는 ‘미래주의 연극’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기계의 시대’를 무대에 도입하여 종래의 부르주아 연극을 철저히 파괴하고, 논리를 초월하여 비이성적 언어를 사용하는 등 자유로운 공상을 실현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로 끝나고 후에 이탈리아 무대미술과 프랑스의 다다이즘, 독일의 표현주의 운동에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마야콮스키는 미래파로써 소비에트의 대표시인이면서 풍자적인 선동포스터와 희곡창작에도 전념합니다. 포스터를 제작한 목적은 격변기 소란의 시대에는 성찰할 시간이 없으므로 쉽고 빠르게 가치관을 전달하려는 의도였고, 투쟁의 무기로써 희곡을 썼습니다.
그는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에서 ‘푸쉬킨, 도스토옢스키, 톨스토이 등을 현대라는 기선에서 던져버려라. 자신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도 알지 못할 것이다.’ 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합니다.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후 내전으로 초토화된 러시아는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려 신경제주의를 도입합니다. 잠시 자본주의 경제를 들여와 민생고를 해결했던 혁명정부는 그사이 자본주의에 물든 노동자 농민을 개조시키려합니다. 인민의 개조가 혁명정부의 목적이었으므로 기존의 문학을 뒤집은 마야콮스키는 사회주의 혁명정부에 가장 잘 맞는 작가였습니다. 소란과 선언의 시대에 나온 그의 작품은 러시아를 매료시켰으나 파괴와 비판과 문제제기만으로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레닌의 죽음이후 소련사회는 더 이상 풍자와 해체를 요구하지 않게 되었고 새롭고 안정적인 사회의 건설이 요구되었습니다.
그즈음 마야콮스키는 그의 희곡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좌익예술전선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자 자기모순에 빠집니다.
1940년 4월 11일, 그는 약속된 강연회에 나타나지 않았고 다음날 권총자살로 37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1928년에 발표된 <빈대>는 5막9장으로 구성된 희곡으로 몽상적 코메디입니다.
전에는 노동자였으나 지금은 당원인 쁘리스이쁘긴의 결혼식이 화재로 끝나고, 그가 냉동인간으로 얼려졌다가 50년 후 미래사회의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서 해동되어 동물원에 갇히게 된 이야기입니다.
마야콮스키는 이 작품에서 시대의 속물성을 폭로하며 빈대와 속물인간은 크기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미래사회의 인간을 고유한 개성을 상실하고 그저 기계와 기구를 움직이는 부속품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유토피아를 만든 장본인이 동물원에 있다’ 는 문제제기를 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풍자만 있고 대안이 없습니다.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되고 갈등도 없는 유토피아는 필연적으로 유토피아가 될 수 없습니다.
작품을 읽은 우리들의 의견이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에, 안선생님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난해한 작품을 쓰는 작가의 난해한 작품이니까요.
안동진 선생님은 “대안이 없는 문학은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문학은 대안이 있는 진지한 고민이 있는 문학으로 갈 것입니다.” 라는 말씀으로 열정적인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오셔서 좋은 강의를 해주신 안동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두통으로 못 나오신 엄선진샘과 오후 강의 때문에 못 나오신 진연후샘, 싱가폴에서 아드님과 함께 계신 정민디샘, 좋은 강의를 함께 못 들어서 아쉬웠어요. 다음주에 뵈요.
이사회를 마치고 우리와 함께 오신 이호상샘 께서 안선생님 강의를 청강하시고 저녁식사를 쏘셨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 주 공부 할 작품은 이사끄 바벨리의 <기병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