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의 수필집 <<눈물은 왜 짠가?>> 중 <가족사진>을 공부했습니다.
스승님의 “밑줄 쫙~~”이란 말씀에 밑줄 그은 명문장들을 모아봅니다.
‘균종 내가 은은하게 고여 있다.’
물만 고일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냄새도 향기도 종소리도 고여 있을 수 있습니다.
‘버섯들은 참 조용하다. 내성적이다.
그림자가 몸에서 외출을 한다.
하얀 맨살 부끄럽다고 갓으로 얼굴가린 버섯들‘
음지식물인 버섯은 그늘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야하는 버섯들을
조용하고 수줍어한다고 재미있게 표현하였습니다.
‘흙 속에서 고소한 참기름을 뽑아 올릴 수 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땅 속에는 무궁무진한 맛이 숨어 있나봅니다,
고구마를 캐면 고구마 맛이 감자를 캐면 감자 맛을 주는
땅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자식새끼 입속으로 밥숟가락 들어간다. 저기가 극락이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부모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자식들이 잘 되었을 때 당사자들보다도 행복한 것이 부모 마음이지요.
‘도끼로 찍고 향기에 놀라다’
도끼로 나무를 찍었더니 베어진 나무 기둥에서 풍겨오는 향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모습이 멋진 문장으로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순간이 번져온다.’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목련꽃이 피는 일을,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을,
계절의 순환을, 너와 나 사이 사랑과 이별의 사건을,
삶과 죽음이 돌고 돔을, 시간과 공간의 옮김을
시인은 모두 번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감이 도화지 위에서 서서히 번지듯이 말입니다.
번져야 사랑이고 죽음조차도 번져야 삶을 환하게 밝힌다는
시인의 생각에 읽는 이들의 마음이 환해질 것 같습니다.
물꽃 / 이재무
비 오는 날 호수에
물꽃 핀다
수직으로 빗방울은 떨어져
수면에 동심원을 그린다
수평으로 잔잔히 퍼지는 물무늬
세모시처럼 가늘고 고운
저 아름다운 적막의 동그라미 속,
누대의 시간 흐른다
소란과 수다에 지쳐
두꺼워진 몸 가누고 싶다
그리하면 한지처럼 얇아져
녹아서 형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은 죄가 많아
선한 것이 눈에 불편한 사람
물꽃은 뿌리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다
졌다 피고 피었다 지는 경이
순간의 삼매경,
차마 어지러워서 땀에 전 작업복처럼
무거운 내 오후의 생
비틀거리며 흠뻑 젖는다.
세상에서 가장 생명이 짧은 물꽃.
단순한 물의 번짐이 아닌 죄에 대한 성찰로 인해
모든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수묵 산수/김선태
가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시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붓이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신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이 아니신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간 지우고를 반복한다
일군의 세필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 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싶더니
아서라, 화룡점정!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를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이 아니신가
보시게나
가창 오리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늑한 남도의 수묵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새들은 간격, 사이를 지키기 때문에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간격을 무시하기 때문에 수시로 사건을 일으키지요.
자연은 간격을 지킵니다.
자연산 걸작 수묵화를 그리는
가창 오리떼의 군무가 보고 싶습니다.
보름달까지도 낙관을 찍은 수묵화는 얼마나 멋질까요?
오랜만에 오신 박영희샘이 홍시 한 박스를 들고 오시는데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시는 분이 김포에서부터 사 들고 오셨으니까요.
그 정성에 걸맞게 홍시는 참 달콤했어요.
다들 감사히 먹었습니다.
제 2회 풀꽃문학상을 수상하시게 된 스승님께
우리 모두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상복이 많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스승님의 시가 제대로 인정을 받는 듯해서
제자들로서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답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순간이 번져옴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