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 달동네 밥상머리
이화수 육개장 집에서 13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뜨끈하고 얼큰한 육개장으로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
박옥희 선생님께서 입가심으로 준비해 주신 하루견과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했고 캐나다 여행 다녀오신
김문경 샘께서 단풍모양의 초콜릿을 나눠 주셔서 달콤한 디저트를 즐겼습니다. 멀리 안동에서 이영실 샘께서
직접 보내주신 버버리 찰떡까지...사랑까지 배달해주신 샘들께 감사드립니다.
1교시 : 명작반 제3강 톨스토이의 성장소설
6. 유럽 여행과 결혼 : 29세때 남편이 군에 가있던 농노의 아내 악시니아와 깊은 관계에 빠져 이듬해 일기에 “금년에는 꼭 결혼을 해야겠다” 고 쓸 정도로 심각했던 톨스토이는 그의 문학작품 <<부활>>과 <<악마>>에서 그녀를 재탄생 시켰다. 18세의 나이로 34세의 톨스토이와 결혼한 궁중의사 베르스의 둘째딸 소냐는 결혼 전 남편이 건넨 일기를 보고 “용서는 했으나 그건 끔찍스러워요!”라고 그 기분을 표현했으며, 이후 톨스토이와 9남4녀를 낳아 길러주었고 악필이었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교정해주고 <<전쟁과 평화>>를 일곱 번이나 고쳐 쓸 수 있도록 정서해주며 나름의 방법으로 톨스토이를 사랑한 여인이었다.
이러한 아내 소냐를 톨스토이 또한 여러 작품 속에 투영했다.
7. 왕성한 창작욕, 8. 평화와 진리 탐구, 9. 파문당한 성자: 전성기를 맞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참회록>>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등의 명작을 집필했으며 이 즈음의 톨스토이는 청빈과 금욕을 예찬하면서도 정작 안락한 삶을 떨치지 못하는 본인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급기야 그의 본심을 이해 못하는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자리를 일부 추종자들이 파고들었다. 그중 하나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는 아예 톨스토이의 대변자로 자처하며 소냐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1891년에 톨스토이는 청빈의 실천을 위해 저서의 판권을 포기하려 했지만 가족은 이에 크게 반발했다. 결국 그는 1881년 이후에 발표한 작품의 판권만 포기하고, 그 이전 작품의 판권은 아내에게 넘기기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는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을 발표하며 필력을 과시했다. 뒤늦게야 종교 문제로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당하고, 격렬한 사회 비판으로 러시아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1908년의 80회 생일에는 전 세계에서 축하 인사가 답지할 정도로 명성의 절정을 맞이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사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1910년에 그는 (체르트코프의 조언을 따라)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편이었던 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저서의 판권을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에 경악한 소냐는 이때부터 남편의 행적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발생한 사건이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가출이었다. 1910년 10월 27일 밤, 톨스토이는 자기 서류를 뒤적이는 아내의 행동에 분격한 나머지 가출을 결심한다. 그는 한 집에 살고 있던 친구 겸 주치의 두샨 마코비키와 함께 몰래 집을 빠져나와 기차를 탔다. 다음날 그의 가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며칠 후, 톨스토이는 기차 여행 중에 감기에 걸렸고, 이는 곧이어 폐렴으로 번졌다.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브의 역장 집을 빌려 몸져누운 톨스토이는 가출한 지 열흘 만인 1910년 11월 7일 새벽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야스나야 폴랴나로 운구되어 묻혔다.
제4강 마크 트웨인의 성장소설
*마크 트웨인 :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1835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가의 작은 마을 해니벌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열두 살에 인쇄소 견습공 생활을 시작했고 1857년에는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이 되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터지자 남군에 들어갔으나 2주 만에 빠져나와 네바다 주 공무원으로 부임하는 형을 따라 서부로 가는 역마차 여행에 동행했다. 금광을 찾겠다는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실패하고, 언론계로 관심을 돌려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면서 '마크 트웨인' 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뱃사람 용어로 강의 안전수역을 나타내는 '두 길 깊이'를 뜻한다. 1865년 유머 단편 <<캘리베러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를 발표해 일약 범국민적 명사가 되었으며, 1869년에는 유럽과 팔레스타인 성지 여행기 <<철부지의 해외여행기>>를 출간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885년 걸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 작가로서의 최 절정기를 맞이했다. 1894년에는 투자 실패와 경영하던 출판사의 도산으로 파산하고 말았지만 1년간 세계 순회강연을 해서 빚을 청산했으며 1910년 뉴욕에서 일흔다섯의 나이로 타계했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문학적 업적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물질문명과 종교와 전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불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신랄한 비판을 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2교시 : 수필반
*송경호 님의 <협재 추억 구하기> : 극중 등장인물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첨가된다면 글에 대한 흥미도가
더욱 높아지겠다.
*조선근 님의 <노르망디 바랑주빌 성 발레리성당> : 내가 다녀오고 느낀 점들을 차분히 이야기로 풀어내듯
쓰되 작가가 혹여 감흥에 깊게 젖은 것은 아닌지 점검하며 써야 좋은 기행문이 되는 걸 명심하자.
*정진희 님의 <90분> : 도입부의 영화에 관한 내용을 짧게 축약하면 좋겠다.
<술> : 글의 마지막 문단을 제목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이영실 님의 <23번째 이사 ‘돈암동’> : 제목부분의 ‘돈암동’을 들어내도 무방하겠다.
<어떤 사랑> : 작가의 진솔한 경험이 녹아있어 좋았다.
*전효택 님의 <폴란드에 대한 첫 기억> : 작가의 학술적인 경험이 드러나는 부분과 정서적인 부분의 접근이
좀 더 추가되면 좋을 것 같다.
3교시 : 티타임
김미원 샘의 매직카드로 츄러스 집에서 오붓한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한국산문 사무실 이전 소식과 곧 있을 가을 세미나에 관한 안내가 있었지요. 작년보다도 더 알차고 풍성해졌다는 세미나 세부일정에 저도 흥미가 느껴졌습니다. 조만간 반장님께서 단톡방에 공지 올려 주시겠다고 하시네요.
오늘 후기의 제목은 톨스토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10년의 마지막 몇 달 간의 행적을 담은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의 원제로 정해봤습니다. 세기의 위대한 문호가 죽음을 맞이한 아스타포보 역, 지금은 톨스토이 역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후기를 작성하며 밤잠이 달아나버린 저도 지금 이 영화를 볼까 합니다. 샘들도 함께 감상해 보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