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목동반을 위해서 일찍 오셔서 수고하시는 이순례 반장님, 곁에서 도와주시는 안옥영샘과 김명희샘...너무 감사하고요,
박유향총무님이 감기로 못 오신 자리를 안정랑샘께서 도와서 채워주셨네요^^.
항상 목동반을 위해 마음 써주심에 감사합니다^^~.
‘미쿡’에서 제일 잘 나가는 초콜렛을 들고 반가운 모습으로 임명옥 편집부장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셨어요^^.
건강한 모습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2주만에 강의실에 오신 정진희회장님. 반가운 모습 뵈어서 너무 좋았구요,
결석계 내신 강월모샘, 장은경샘, 손동숙샘.. 담 주에는 꼭 뵈어요.
세 편의 작품 합평 내용과 송교수님의 소설 <쉽게 쓰여진 시>의 강의 내용을 올립니다.
<참을 수 없는 두통의 가벼움> - 황다연
송교수: 두통에 대해 참 길게 잘 썼다.
작가: 오랜 만에 쓴 글인데, 개강이 다가오자 책장을 뒤적이다가 오래 전에 썼던 메모를 글로 만들어봤다. 1년 가까이 글을 안 썼기에 문장도 안 만들어지고 고생을 하긴 했는데 내봤다. 학부모독서회에서도 글을 한 편 내야했기에 이 기회에 내게 되었다.
송교수: 이 글을 메모로 다 써 놓았다는 것인지...
작가: 메모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평소에 써 놓았던 메모를 다듬었다. 두통을 자주 겪다보니 그 고통을 쓰게 되었다.
송교수: 두통을 놓고 마치 건달 다루듯이 술을 주었다 돈을 주었다 하며 달래며 사는 것도 방법이다. 조지훈 선생의 시를 한 편 가져왔다. 그도 평생 건강치 못했다. 그는 병을 끌어안고 살았다. 제목이 <병에게>이다. 병을 친구처럼 대하며 오면 반갑게 대해줘서 보내고 하는 심정을 잘 드러낸 시이다. 황다연님의 글이 이런 분위기다. 다만 산문으로 다룬 것이 다르다. 또한 이 글은 분석적이고 대상이 친구 같지 않고 깡패 같다. 좋았다.
원래 황선생 글이 돌맹이 같이 단단한데 좀 더 정서를 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름과 일탈> - 김은희
송교수: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감상한 글이다. 우리가 모르는 작품을 잘 소개한 글이다. 체호프의 소설을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인지?
작가: 페미니즘의 소설로 확실히 정의하기 보다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의 모습을 정의해보려고 했다.
독자: 공간이탈이 일탈로 이어진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독자: 앞부분이 클래식과 뽕짝이 합쳐진 느낌이었다. 앞부분을 세미클래식 정도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
독자: 앞부분이 좀 길었다.
독자: 이어령, 석영중 교수, 이사야 벌린 등의 이야기는 빼도 좋을 듯하다.
송교수: 이런 글들은 김선생이 전문가이니 덧붙일 것은 없고 다 된 글이지만 여러 사람들의 말을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외갓집> - 문경자
송교수: 문선생의 글 중에서 핸섬해진 글이다. 글이 좋아졌다. 앞부분이 달필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끝부분의 ‘지금은 없는 집’이란 표현도 좋았다. 이 글은 딱 된 글이지만, 수업시간이기에 덧붙이자면, 왜 여기까지만 썼는가?라고 묻고 싶은 글이다. 그립다고 할 때 한 없이 그립다고만 하면 글이 아니다. 외할머니와는 핏줄로 연결되어 있기에 외갓집이 그립지만, 지금은 외할머니가 안 계시는 집이기에 가지 않게 된다. 그렇듯이 글에는 ‘명암’이 있어야한다고 생각된다. 외할머니가 있어서 좋았던 외갓집이라면 지금은 왜 가지 않게 되었는지도 넣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선생의 글에 요구되는 것은 ‘명암’의 대조이다. 출발선상에서부터 그 부분을 생각해서 어두운 면도 계산해서 넣어야한다.
독자: 친정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는지, 외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는지 궁금했다.
작가: 친정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하늘을 보며 ‘내 딸을 살려달라’고 빌던 모습이 생생하다.
독자: 그 부분도 넣었으면 좋겠다.
송교수: 문선생의 지금까지의 글 중에서 깔끔하고 정갈하고 글이 살아났다.
독자: 명암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지금은 없는 집’이 그런 것 같다.
송교수: 그 한 줄로 촌철살인 할 수도 있지만 좀 더 보충할 수 있겠다는 말이었다. 글이 좋고 된 글이다.
<쉽게 쓰여진 시> - 송하춘
시 잡지 <현대시>에서 청탁받아 쓴 소설이다. 좋아하는 시를 가지고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쓴 소설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쓴 글이다.
일본에 있을 때 지인이 찾아와서 교토를 하루 관광시켜준 일화를 적었다. 금각사가 아주 좋았다. 일본 작가 작품에서 “이 세상에 금각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라고 나오는데 정말 실감했다.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어머니를 만나면 어머니를, 미인을 만나면 미인을 죽이고, 금각까지도 불살라서 모든 것을 없애는 불교의 '무'를 말하는 소설이어서 아주 좋아했는데 금각을 직접 보고 정말 감동 받았었다.
독자: 어딘가 모르게 놓쳐버린 사랑을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
송교수: 못 생긴 일본 교포가 있었는데 그 학생이 나한테 접근한 적이 있었다. 그 일화를 양일순 일화로 여기에 써 먹은 것이다.
독자: 문학이 뭔지, 절필할 생각은 안 해보았는지...
송교수: 72년에 데뷔했는데, 지금까지 절필할 생각은 안 해보았다. 죽도록 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문제를, 사회적 문제의식을 빼니 소설이 되더라’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독자: 가벼운 소설이라고 송교수님은 말씀하시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소설이고 주제가 잘 드러난 소설이었다.
송교수: 가까운 지인들이 ‘송형은 시를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들 하는데, 내가 시적이다. 그래서 앞부분도 시적으로 시작했다. 여기에 나오는 이탁이 고려대 교수 ‘오탁번’ 시인이다. 오탁번 시인이 선배이기에 나보다 더 잘 그려진 면이 있다. 그 형이 지중해로 혼자 여행을 갔다가 일본에 왔었다. 그가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나보고 문학상 축하글을 한 편 써달라고 해서 길게 쓴 적이 있었다. 그 후에 <현대시>에서 시를 하나 넣어서 글을 써달라고 하길래 그 글에 소설적인 장치를 넣고 주인공들을 넣어 쓴 글이다. 그런 내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제자들은 그런 축하글이 소설로 바뀐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고 했다.
독자: 시인들에게 바친 헌사글처럼 느껴졌다.
# 목동반 소식
제가 지난 주에 이어 2주연속 점심을 함께 못해서 죄송해용^^~.
자세한 점심 풍경과 티타임 풍경을 댓글로 올려주시면 캄사 캄사하겠습니다^^~.
한 줄의 댓글이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리의 글솜씨가 늘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죠?
댓글 부지런히 다시는 분들이 글과도 친하답니다^^.
목동반님들...좋은 오후 되시고,
어수선한 시기에 건강하게 지내시고 담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