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수업입니다.
먼저, 안정랑님의 <남겨진 자>는 사촌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한 글감에 맞게 언어구사를 잘했으며 품위 있게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는 평입니다. 교수님 표현에 의하면, 저쪽에 남겨진 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쪽에 남겨진 자의 정서를 잘 표현해주었다고 했습니다.
문경자님의<어린 꽃잎>은 최근 언론의 중심에 있던 아동학대 사건 중의 하나였던 원영이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원영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 언론에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사건 속으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빠져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문제를 건드려 준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특히 더 이번 사건이 마음 아팠다는 작가의 이야기와 그러한 작가의 경험이 원영이의 이야기 속에 숨어버린 점은 아쉬웠다는 평입니다.
에리히 케스트너 <행복에 대한 동화>는 ‘살아보니...’를 서사적 구조로 쓴 작품이라는 교수님 말씀을 참고삼아 함께 감상했습니다. 삼사십 세(아마도) 정도의 나와 일흔 살 정도의 노인, 노인이 들려주는 사십년 전의 그(노인)의 이야기 형식으로 꾸려가는 글입니다. 시간의 격차를 두고 40년 전 이야기를 분리해놓고 자신을 똑 같이 겹쳐놓은 것 같은 추측이 드는 글이기도 합니다.
노인은 세 가지 소원 중 허무하게 날려버린 두 가지의 소원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건드리지 않았다는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은 끝내 말해주지 않고, 그 후로 행복했냐는 물음에 “소원이라는 것은 앞에 두고 있을 때에만 좋은 거니까요”라는 아리송한 말만 남긴 채 뽕 하고 사라져버리고 말죠.
여기까지, 이상한(^^) 동화를 분석해보는 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두 편의 작품으로 깊이 있는 합평과, 속 시원한 대답대신 살다보니 할 수 있는 모호한 한마디만 남기고 끝낸 짧은 동화로 수업을 마쳤습니다. 감동을 주는 글은 왜 좋은지를, 아쉬운 글은 무엇이 부족한지를 함께 공부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수업 내용을 조금 덧붙이면, 서론(어떠한 사건)속으로 들어간 글은, 특히, 누구나 다 아는 소재에 대해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으면 내가 본 관점, 나의 시각인 작가의 해석(세상을 보는 눈, 세상에 비추어볼 때 문제점)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빠져나온다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 함께 사는 문제이며, 또한 ‘함께 사는 세상 이야기’로 끝맺음을 해 주어야 독자들이 수긍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냉철한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이러한 점은 글쓰기 전부터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데도 글로 쓰는 것은 물론 어렵습니다. 열공하시는 우리반 월님들의 요점정리 노트를 수업후기에 참고하고 싶은 요즘입니다. 후기에서 놓친 핵심은 기억주머니를 열어보시면서 글쓰기에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달콤한 봄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