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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학기 제 2강;한용운『님의 침묵』읽기(롯데 강남반)    
글쓴이 : 신재우    26-06-14 15:10    조회 : 46
1.한용운『님의 침묵』읽기 .
  가.<3.알 수 없어요>.
     1).한용운의 다른 시처럼 '넌지시' 암시만을 전하는 작품이다.
     2).'님'의 발자취, 얼굴, 노래, 발꿈치, 시(詩)는 모두 자연에 깃들어 있다.
     3).스피노자의 범신론적인 신즉자연(神卽自然)은 한용운에게서는 '님은 
         곧 자연'이라는 성찰로 드러난다.
  나.<4.나는 잊고저>.
      1).이 시는 '망각'이라는 행위를 통해 오히려 '사랑의 절대성'을 증명하는
           역설을 담고 있다.
      2).님에 대한 사랑을 피할 수 없다는 사랑의 찬가다.
  다.<5.가지 마셔요>.
      1).이 시에는 '면류관', '거룩한 천사의 세례', '제물', '백합꽃' 등 성서적 사유를
          보여주는 단어들이 보인다.
      2).죄악의 길로 가려는 제자를 만류하고, 고난의 길을 가라고 하는 예수의 권유
           처럼 읽히기도 한다.
  라.<9.예술가>.
      1).님을 향한 사랑을 화가, 성악가, 시인이라는 세 가지 예술가의 모습에 
          투영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2).'나'는 깜냥이 안 되는 모자란 예술가지만, 님의 발걸음과 작은 
          돌멩이까지도 사랑하고 기록하는 '진실한 삶의 태도'로 살아가겠다.
2.박수밀의 『연암 산문의 멋』읽기.
  가.낭환집서문<모든 경게에는 꽃이 핀다.>
       1)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껴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2).반달은 반쪽이 아니라 엄연히 둥근 달이다.다만 나머지 반쪽이 보이지 
           않아서 반달이라 부를 뿐이다.
       3).보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출 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차미영   26-06-14 17:42
    
한용운의 「님의 침묵」,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구는 역설로 배워 왔으나, 불교의 중도 사유로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님은 현실에서는 떠났지만, 화자의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는 계속 살아 있습니다. 이별이 곧 단절이 되지 않고, 부재가 사랑의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시구는 있음과 없음, 만남과 이별을 고정된 반대항으로 보지 않는 중도를 드러냅니다.
 중도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의 중용과 구별됩니다. 중용은 과잉과 결핍 사이의 산술적 중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용기가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성립하듯, 중용은 구체적 상황에 맞는 판단과 절제를 찾는 윤리적 태도입니다. 반면 중도는 존재를 고정된 대립으로 보지 않고, 관계와 조건 속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님의 침묵」의 역설은 부재와 현존이 함께 성립하는 존재론적 사유 즉 중도로 읽어야 합니다.
 「알 수 없어요」에서는 자연 이미지를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과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원관념은 알 수 없는 주체, 곧 반복되는 ‘누구의’입니다. 보조관념은 오동잎, 푸른 하늘, 향기, 작은 시내, 저녁놀입니다. 화자는 오동잎을 ‘발자취’, 하늘을 ‘얼굴’, 향기를 ‘입김’, 시내를 ‘노래’, 저녁놀을 ‘시’로 묻습니다. 자연은 알 수 없는 주체의 흔적을 감각으로 드러냅니다.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은 세계를 스스로 산출하고 표현하는 능동적 자연입니다. 「알 수 없어요」의 자연도 눈앞의 풍경을 넘어, 의미를 생성하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다만 한용운의 자연에는 불교적 연기, 알 수 없는 주체를 향한 그리움이 함께 작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