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유랑 / 이재무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참새 무리를 만나다
저들은 떼 지어 다니면서 대오 짓지 않고
따로 놀며 생업에 분주하다
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다
저, 경쾌한 유랑의 족속들은
농업 부족의 일원으로 살았던
텃새 시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가는 발목 튀는 공처럼 맨땅 뛰어다니며
금세 휘발되는 음표 통통통 마구 찍어대는
저 가볍고 날렵한 동작들은
잠 다 빠져나가지 못한 부은 몸을,
순간 들것이 되어 가볍게 들어 올린다
수다의 꽃피우며 검은 부리로 쉴 새 없이
일용할 양식 쪼아대는,
근면한 황족의 회백과 다갈색 빛깔 속에는
푸른 피가 유전하고 있을 것이다
새벽 공원 산책길에서 만난,
발랄 상쾌한 살림 어질고 환하고 눈부시다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참새들은 유랑생활을 합니다.
발랄 상쾌한 그들의 살림살이는 환하고 눈부시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삶이란 흔들리면서 가는 역설과 역동임이 분명합니다.
이 시를 쓰면서 시인은 참새에 관해 공부하기 위해 사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황족, 회백, 다갈색은 다 사전에서 얻은 소득입니다.
아무리 잘 아는 소재일지라도 사전을 찾다보면
유사어, 고유한 우리말도 찾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사전부터 펼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어둠이 그립다/ 이재무
도회지에 하는 오래 살다 보니 진한 어둠이 도회지에 그리울 때가 있다
왜 있지 어둠이 않은가 광 속처럼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캄캄한,
그 원색의 어둠이 뜬금없이 한 울컥 사무칠 때가 있는 것이다
도시의 어둠은 지쳐 있다
뜬금없이 오래 입은 난닝구처럼 너덜너덜하고 빵구가 난 곳도 있다
밤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쫓긴 어둠들은 어디에서 유숙하는 걸까
시골길 / 이재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걷는다
두근두근 길도 내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사 알겠다
내가 시골길에서 자주 넘어지는 이유
사람들만 문명에 시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생물들은 잘 모르겠지만 생물들은 모두 잠을 잔다고 합니다.
가로등 불이 켜져 있는 곳의 곡물들은 잠을 잘 자지 못해 잘 자라지 못하지요.
동식물은 10시쯤 잠이 들어 3~4시에 깨어납니다.
인간도 원래는 그런 리듬에 맞추어 살았지만
불이 발견되면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지요.
타이어는 속도를 상징합니다.
속도의 표상이지요.
타이어의 탄생은 속도의 탄생입니다.
도로를 벗어난 타이어는 속도의 경쟁에서 물러난 운명입니다.
닳고 닳아서 버려진 폐타이어는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함민복의 수필 <푸덕이는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를 공부했습니다.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을 옮겨봅니다.
바닷바람이 못에 걸린 천 갈라지듯 내 몸에 걸려 후르르륵 갈라진다
바람이 내 몸을 읽는다
체력이 떨어지자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삐죽삐죽 돋아났다
가을 낙지는 문에 문패달고 살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죽은 사람의 다리가 되어 걸어가 주지 못한 내 삶이 한심했다
마음이 비포장길처럼 덜컹거렸다
어머니의 얼굴엔 주근버섯이 풍년이었다
지루할 정도로 경험 사례를 촘촘이 묘사하다가도
건너 뛸 때는 과감히 건너 뛴 함민복의 수필기법을 우리도 배워야겠습니다.
우리는 사유의 숙성을 통해서 문자로 기록된다고 생각하지만
기록한 이후에 사유가 나옵니다.
평상시는 잡다한 생각, 욕망에 시달리다가
문자를 통해서 사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사유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를 새삼 깨달으며 오늘 강의는 끝을 맺었습니다.
인영샘이 맛있는 불고기 정식으로 푸짐한 점심 한 턱을 내셨습니다.
후식으로 달콤한 눈꽃빙수까지 먹었습니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선희샘이 달콤한 초콜렛과 함께 오셨습니다.
아직 바쁜 일정을 끝내진 못한 벗들의 빈자리가 많았지만
가을 학기에는 다시 채워질 것을 맏습니다.
한 주 남은 팔월 마무리 잘 하시고 가을이 시작되는 구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