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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7-01-09 18:45    조회 : 3,360

 

세월 / 이재무

 

허구한 날 지청구

 

힘 부친 일이나 시키고

 

찬물이나 끼얹고

 

허구한 날 욕설 퍼부어대며 발길질

 

어렵게 왔던 여자 쉽게 떠나고

 

식솔 제 명에 못 살게 하고

 

믿는 도끼 발등 찍고

 

몽둥이 휘둘러 마음 가지 부러뜨리고

 

홧병 심어놓더니

 

몸속 기관들 이음새 느슨하게 풀어놓더니

 

사는 게 다 그렇지요, 허허허!

 

실없는 사람 되게 하다가도

 

불끈 솟는 욕망으로 벌겋게 몸 달궈 놓더니

 

그래도 가고 나면 빈 자리 커서

 

아쉽고 허전한 그것,

 

세월을 의인화한 시입니다.

관념적이자 추상적인 세월을 보이도록 만들었지요.

구체적인 표현으로 인해 세월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주름진 거울 / 이재무

 

거울 속 굵게 팬 주름들 곁,

 갓 태어난 잔주름들

 어느새 일가를 이루었구나

 

 저 굴곡과 요철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이 만든 것

 주름 문장을 읽는다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눈에 거듭 밟히는

윤곽 흐릿한 얼굴이 있고

만지면 촉촉이

손에 습기가 배는 풍금소리가 있다

 

이마에서 발원한 주름 물결 

번져서 온몸을 덮으리라

 

지난 세월 동안 나와 함께 동행해온

슬픔, 즐거움, 낭만이 주름이라는 형태로 남았습니다.

이마에서 발원한 주름 물결 번져서 온몸을 덮으리라는 문장에서

세월을 낚아봅니다.

 

 

 

뻘 같은 그리움 / 문태준

 

 

그립다는 것은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 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들어 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 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그리움이라는 관념을 보고 만질 수 있게 쓴 시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물체와의 유사성을 찾아서 관념을 표현하면

좋은 시나 수필이 됩니다.

 

엘리엇은 시는 감정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했습니다.

감정절제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수식어를 아끼는 것도 감정을 절제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리고 쉬는 겨울 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들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화려한 풍경을 동경하는 인간들은 밤의 길이도 짧게 만들었습니다.

밤이라는 자연현상을 빼앗은 인간들 때문에

자연의 생명력은 파괴되어간다는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연말연시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유년이 시작된 지도 열흘이 되어갑니다.

온화했던 날씨가 다시 추워졌네요.

사진 동아리 벗 장재순 님을 모시고온 전제화 님 덕분에

강의실이 한결 따스해졌습니다.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는 포토에세이를 쓰고 싶으시다는

장재순 님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진미경   17-01-11 11:24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지는 포토에세이에 대한 갈망으로 일산반의 문을 두드리신 전제화샘과 장재순샘!
두 분의 일산반 입성을 환영합니다.
지금으로도 좋지만 새로운 문우님들이 오시면 더 풍성해집니다.
간절함에 노력이 더해지면 멋진 결실을  잉태하리라 ! 그런 예감이 드네요.
2017년 정유년의 1월이 벌써 중순으로 향해 갑니다.
새 포대의 쌀 가마니를 열기만 하면 금새 비어가는 세월의 빠름을 실감합니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싶은 열망을 살짝 얹어볼랍니다.
쌀쌀한 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굿데이!!^^
한지황   17-01-15 08:32
    
세월을 쌀포대에서 사라지는 쌀에 비유한 대목이 참 실감나네요.미경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내가 얻은 것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해요.
내 곁에 남아있는 결과물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지요.
벗들과 함께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정이라는 큰 선물을 주었으니까요.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