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르 추드라
막심 고리키 (1868~1936)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사랑과 생명을 내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육체가 없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남녀 간의 사랑이 가능할까. 그런 질문을 해 본 작품이었습니다. 기이한 늙은 짚시 마카르 추드라는 한 젊은이에게 전설 같은 충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가 고리키는 1868년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볼가강 항운회사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사망 후 외조부모와 살게 되지만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제화점 점원, 화공 도제, 기선 주방일 등 궂은일을 하며 러시아를 떠돕니다.
19세 때 자살기도를 하고 훗날 “나의 일생 중 가장 수치스럽고 우둔한 짓” 이라고 회고합니다.
1892년 ‘캅카스’ 신문에 <마카르 추드라>로 등단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습니다. 이후 칼럼, 르포, 평론 등의 글과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여러 단편 소설들을 발표합니다.
키예프 대학생 강제징집을 항의한 페테르부르크 카잔성당 광장의 군중집회에서 체포되어 크리미아로 보내집니다. 돌아온 뒤 ‘르포와 단편소설’을 출간하고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러시아 사회 문화의 주요 인사가 됩니다.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고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돌아와서 <어머니><고백><어린 시절>등 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혁명 후 정권과 불화하면서 레닌과는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나 스탈린과는 갈등을 일으킵니다.
<시의에 맞지 않는 생각들><클림 삼긴의 생애>등을 집필하고 제1차 소련 작가동맹 의장에 선출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1936년 중 갑자기 사망했는데 스탈린이 제거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리키는 혁명을 예감하는 민중 출신의 작가로서 <보샤키>(맨발의 부랑자)와 같은 민중들의 현실과 꿈과 의지를 묘사합니다. <어머니>에서는 불굴의 노동자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을 창조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고리키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회적, 직업적 속박에서 벗어난 부랑인(농노나 노동자도 아님)이 많으며 삶과 문학에 새롭고 의미 있는 역할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의 체험’입니다. 자유를 갈구하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르려합니다.
<마카르 추드라>에서도 이를 보여줍니다. 고리키는 자유의 테마를 주로 구비문학 속에서 찾았고 주인공들의 호방함과 윤리를 초월한 자유에의 갈망, 용감무쌍한 기질을 그려냅니다. 고리키 창작의 원천은 구비문학과 그의 떠돌이 경험이었습니다.
감정이 풍부하게 들어간 서사문학적 색조 속에서 오랜 세월을 자유롭게 떠돌았던 늙은 짚시 마카르 추드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사랑도 희생할 수 있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매력적인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한 젊은이에게 들려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충고를 합니다. 자유로운 삶이 최고의 가치임을 알려줍니다.
읽은 소감으로
“완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은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걸까 의문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미주의적 이다”
“자유로울 때 사랑도 얻을 수 있다”
“스무 살 무렵의 사랑은 위험도 감수 한다”
“자유로운 삶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유란 내 감정의 자유, 내 육신의 자유이며 나의 자유를 알아 준 작품이다”
“나 스스로 나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
“인생 뭐 있냐. 별거 없다. 사랑도 결국 공허하다”
“마음으로는 격정 멜로를 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못한다”
등등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스무 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마흔 살에 사회주의자 이면 머리가 없는 것’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리키는 사회주의에 대한 최고의 신봉자였으므로 그는 평생동안 스무살의 심장으로 열정에 불타올랐을 것 같습니다.
박서영샘이 가져오신 인절미와 땅콩 감사했고 몇 주 결석 후에 나오신 유병숙샘이 맥주를 사주셔서 오붓한 시간 가졌습니다.
다음 주는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