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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남자 오네긴 (러시아 고전읽기반)    
글쓴이 : 심희경    17-03-18 10:45    조회 : 2,922

나쁜남자 오네긴...

지난주에 이어 예브게니 오네긴5장에서 8장까지를 마저 공부했습니다.

5장은 따찌야나의 무서운 꿈과 그녀의 영명축일 축연에 대한 풍경, 6장은 오네긴과 렌스끼의 결투와 렌스끼의 죽음, 7장은 오네긴이 떠난 후 따찌야나의 생활과 그 후 어느 공작과의 결혼, 8장은 모스크바에서 두 사람의 재회와 오네긴의 다찌야나에 대한 열정과 실연에 관한 내용입니다.

따찌야나의 사랑을 거절했던 오네긴은 결투로 친구 렌스끼를 죽이고 오랜 세월을 떠돌다가 어느 날 한 공작부인을 보게 됩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그 여인은 바로 따찌야나였습니다. 이제는 오네긴이 따찌야나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합니다.

따찌야나는 오네긴에 대해 슬프고도 위험한 괴짜, 지옥 아니면 천국의 피조물, 천사이기도하고 건방진 악마이기도 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 인식에는 사랑의 아픔도 포함하고 있겠지요.

그녀는 사랑하는 이가 떠난 빈집에 찾아가 그의 서재에서 그가 남기고간 책을 읽습니다. 손톱자국이 남아있는 페이지와 여백에 연필로 끼적여 놓은 것에서 탄식의 대상으로 정해준 사내를 느낍니다.

슬기로운 그녀는 지나간 사랑을 잘 보냈고 새로운 운명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옛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청춘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한 그녀는 푸쉬킨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러시아의 여인상입니다.

작품 전체가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하지만 렌스끼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절묘합니다. 슬픔, 고통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푸쉬킨은 렌스끼에 대해 애도기간을 가졌습니다. 통곡대신 관조하는 시선으로 처리했습니다.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괴팅겐 정신으로 가득 찬 칸트의 숭배자인 젊은 미남자 시인의 죽음이 칼로 베인 듯 아팠습니다.

희망과 사랑이 뛰고 생명이 솟구치던 심장에서 더운 피가 흘러나오는 죽음의 장면은, 푸쉬킨이 렌스끼의 죽음을 통해 본인의 낭만주의적 작품 활동이 끝났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이 렌스끼의 죽음은 푸쉬킨의 죽음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연적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죽음을 당하는 렌스끼와 푸쉬킨, 직관이 뛰어난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인물 렌스끼의 죽음을 통해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듯이 보입니다.

청년시대에 청년다웠던 자는 행복하다. 청춘이 우리에게 아무 목적 없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등등의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문장들은 우리의 청년의 때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읽은 소감은

잘못된 길을 되돌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고전은 나이 들어서 읽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청년시절에 스스로 청년임을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의 남편처럼 책으로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쉬킨 때문에 나의 인생이 풍요로워졌다

실연당한 사람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뛰어난 사람이 사랑 때문에 요절한 것이 허망하다

생각지도 않은 문장들이 쏟아진다. 새파랗게 밑줄을 그었다

젊은 시절의 오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만났다

오네긴처럼 사랑이 왔지만 거절한 적이 있었나. 따찌야나처럼 사랑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미완성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각자의 길, 운명의 길을 간다

푸쉬킨의 작품을 읽으며 품격있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푸쉬킨에 대해 고리끼는 모든 시작의 시작이다라고 했고, 현대의 러시아 작가들은 푸쉬킨은 우리들의 모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러시아를 넘어서 이곳의 우리에게 까지 그의 작품들이 우리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며 고전을 읽는 이유 아닐까요? 내 뒤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는 현재의 삶에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것.

나쁜 남자 오네긴 때문에 생긴 모든 일과 러시아의 풍경이 책속에서 수런거리고 있습니다.

 


이영희   17-03-19 01:14
    
우리 심반장님은 ....이렇듯 퀄리티 있는 후기를 매번 올려주십니다.

세월이 간다고...나이를 먹는다고 쉬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합니다.
시간을 보내는 일조차 쉬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푸쉬킨을 읽고, 괴테를 읽고
톨스토이와 니체의 정신도 들여다보곤 합니다.

어린날부터 문학소녀, 소년으로서 ...많은 책을 섭렵해 온 사람은 세상에 많고 많습니다.
그 중에 남다른 천재성으로 ...뜻을 펼쳐 우리에게 멋진 세계를 열어보이는 대 문호들.
 그들이 있어....우리가 러시아 문학반에서 행복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쭉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우리 심반장님도 그 아까운 소양을 ...집에 변변한  책 한 권 없다는  사람과 
너무 자주자주 ...자신을 비교해서는 안될 듯 합니다.
문학대 문학으로 .비유가 되며 ..선망할 수 있는 사람은 고전은 물론 현대 작가 중에도  많고 많은데.....ㅜㅜ

영화를 기대하며 물러갑니다.
박서영   17-03-20 21:11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충만함이 가득한 시간. 오네긴과 따찌아나, 렌스키, 슬픔마저 정절을 지키지 못한 올가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주의 영화 상영도 기대되네요.러시아인들이 항시 지참하고 다니며 읽는다는 (예브게니 오네긴)의 어느 페이지를 펴도 아름답고 유익하고 감동을 주는 문장들~
깔끔하게 복습까지 시켜주니 심반장님 수고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대만여행 기념 점심도 잘 먹었구요~~
임명옥   17-03-25 10:19
    
그동안 단편들로 주제에따라가기 급급했다면 2주간의 장편읽기는 독서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분을 편린하여 음미했던 기간이었지요.
푸시킨의 문장력에 감동했고 절묘한 묘사에 가슴튀기도 했답니다.
느끼는 시점이 다르지만 시대에따라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은듯합니다. 많은공감과 남은 미완성에 햇볕과도 같은 지혜를 주었답니다.
먼여행 다녀오시고 초콜렛에 맛난 점심까지 사주신 심반장님 사랑합니다.
봄이 깊어지는데 향기도 진동하는데 방학맞으셨던 샘들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