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실전수필(12. 01, 목)
- 기형도의 시(안개 외)
1. 기형도(奇亨度)시인 (1960~1989)
류미월
(생애 및 활동사항)
1960년생 1979년 연세대 정법대 입학. 교내〈연세문학회〉에 입회 문학 수업. 1980년 정치외교학과 진학. ‘80년의 봄’「노마네 마을의 개」기고로 당국에 조사 받음. 1983년 3학년으로 복학.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윤동주문학상〉에 시「식목제」로 당선.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 1985년 시「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2월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 안장. 5월에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 <기형도 문학관>이 2017년 6월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개관 예정.
(기형도의 시 세계)
기형도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 환경과 아픈 아버지, 장사하는 어머니, 직장을 다니는 누이 등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의 시의 원 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그의 시는 우울과 비관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개인적인 체험 외에 정치 사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안개」는 억압적 현실 속에 개체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고, 「전문가」, 「홀린 사람」 등은 기만적인 정치 현실과 무력하게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풍자함으로써 간접적인 사회 비판적 성격을 보여준다. 기형도의 뛰어난 점은 오래 망설이며 회의하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마침내 인간 삶의 보편적 명제, 실존의 부조리성과 무의미성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2. <작품 감상>
<안개>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갯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 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 당선작)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3.*Tip 테드 휴즈(Ted Hughes 영국시인)가 말하는 시 쓰는 방법
고독과 벗 삼아라
바람과 쉼 없이 마주하라
무엇이든 뒤집어 생각하라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으로 이끌어라
늘 문제의식을 가져라
동물의 이름을 머리와 가슴에 넣고 다녀라
눈에 안 보이는 것까지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라
문체와 문장에 겁먹지 마라
자신만의 시각을 가져라
*테드 휴즈(1930년 8월 17일 ~ 1998년 10월 28일)는 영국의 시인, 아동문학가. 198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영국 계관 시인. 32세에 가스불을 피워 자살한 시인 실비아 플러스가 그의 아내다)
4. 종로반 동정
학우 류미월 님이 준비한 기형도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김창식 교수님도 기형도 앓이를 한동안 했었다며 보충 설명을 하였다. 앞으로도 학우들이 자료를 준비해서 강의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주제가 자기에게 주어질지 학우들은 잠시 긴장. 제발 간단하고 쉬운 주제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16의 마지막 달 첫 강의 시간을 가졌다.(학우들 합평 글은 다음 강의에 올리겠습니다.)